1945년 5월 8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이 항복했다. 그 후 우리가 아는 독일 역사는 이렇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열려 나치 전범들이 처벌받았다. 전쟁과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반성하며 독일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로 재탄생했다. 준법정신과 근면 성실을 바탕으로 독일은 ‘경제 기적’을 일으켰다.
현실은 미묘하게 달랐다. 독일 사회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제대로 과거를 돌아봤다. 그전까지는 뻔뻔할 정도로 책임을 회피했다.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여겼다. 폐허가 된 나라에서 굶주림을 견디며 살아남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열변을 토했다.
<늑대의 시간>는 1945년부터 1955년까지 그런 독일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 하랄트 얘너는 독일 언론인이다. 그는 공식 문서나 출간된 책뿐 아니라 일기, 수기, 문학작품, 신문, 잡지, 영상자료 등을 총동원해 당시 평범한 독일인들의 생활상과 심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일인은 잠시도 낙담할 겨를이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인이 마주한 현실은 ‘지옥’과 같았다. 도시는 폐허가 됐고, 거리에는 시신이 널렸다. 굶주림도 문제였다. 연합군의 식량 배급이 충분치 않았다. 생존을 위해 독일인은 약탈, 암거래, 좀도둑질에 매달렸다.
도덕관념 따윈 부차적인 문제였다. 품위 있고 점잖은 사람들까지 약탈에 나섰다. 시골로의 ‘도둑질 투어’도 벌어졌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있는 물건이 없는 도시 사람들은 시골 농부들의 수확물을 훔치기 위해 기차를 탔다. “얼어 죽지 않은 사람은 모두 도둑질을 했다. 모두가 도둑이라면 과연 서로를 도둑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한편에선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온 환희도 터져나왔다.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전례 없이 뜨거운 ‘삶의 기쁨’을 만끽했다. 항복 선언 후 보름 만에 폐허 속에서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두 달 만에 밤새 투어를 돌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댄스홀이 영업을 재개했다.
전체 인구의 5%만이 살아남은 쾰른에서도 으스스한 잔해 사이로 카니발 행렬이 지나갔다. 1947년이 되자 사람들은 벌써 휴양지로 휴가를 떠났다. 사회 분위기도 자유롭게 변했다. 삶은 더 개방적이었고, 예술은 더 혁신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과거 반성’은 없었다. 항복을 선언한 날, 과거에 대한 기억 자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듯했다. 연합군이 당황할 정도였다. “맹목적으로 불같이 싸우던 독일인들이 항복하자마자 갑자기 순한 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을 나치에 이용당한 피해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유대인 학살도 마치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쉬쉬했다.
책은 1945~46년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도 과거사 청산과 거리가 멀었다고 지적한다. 몇몇 전범들이 처벌받았지만 대다수는 풀려났다. 서독 초대 총리를 지낸 콘라트 아데나워 역시 정부 역시 나치 범죄를 단죄하지 않았다. 그는 “깨끗한 물이 없는 동안에는 더러운 물을 버리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당시 독일 사회의 전반적인 정서였다.
이런 침묵이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영원히 가릴 순 없었다. 점점 더 많은 증언이 나왔고, 온 세계가 경각심을 갖게 됐다. 결국 1963~6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우슈비츠 재판이 열리면서 독일인들은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와 마주하게 됐다. 후손들도 들고 일어났다. 68세대들은 “나치 세대에 불복종 운동을 펼치자”고 했다.
저자는 독일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자기반성을 이룬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본다. 부끄러운 역사를 직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이, 그리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생존 욕구는 죄책감을 차단한다. 이는 전후 시대에 관찰되고, 인간뿐 아니라 인간 자아의 토대에 대한 믿음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집단 현상이다.” 책은 우리가 이런 의식적 억압과 왜곡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묻는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