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올해로 만료되는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각에서 나오는 ‘대기업 퍼주기’라는 지적은 거짓 선동”이라고 했다. 어제 경기 수원 성균관대 반도체관에서 연 세 번째 민생토론회에서다. 국가 명운이 걸린 반도체산업에, 그것도 남들이 다 하는 수준의 세제 지원을 놓고 특혜 논란이 나오는 상황은 개탄스럽다.
반도체 전쟁이 국가 대항전으로 격화하면서 경쟁국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으며 총력전을 펴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으로 2027년까지 570억달러(약 75조원), 유럽은 2030년까지 430억유로(약 63조원), 중국은 3429억위안(약 63조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일본도 최대 10년의 장기 감세와 보조금 등 전폭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한국은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설비 투자할 경우 세액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내용의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치열한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경쟁력을 높이기엔 역부족이다. 세계 주요국과 같은 수준의 보조금 지원은 거의 없고, 기업 세금 부담도 여전히 큰 실정이다.
우리 반도체는 기로에 서 있다. 메모리 분야의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부문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지난한 과제를 풀어야 한다. 근래 안보적 가치까지 더해진 반도체가 경쟁력을 잃는 순간 국가적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치가 앞장서 더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을 독려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도 ‘부자 감세’와 ‘대기업 특혜’ 등 철 지난 정치 프레임이 발목을 잡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정부가 추진한 법인세 인하가 1%포인트 찔끔 감세에 그치고, K칩스법이 2022년 8월 발의 후 반년 넘게 표류한 것도 이런 저급한 선동 탓이다. 더 이상 정략에 미래가 갇혀선 안 된다. 당장 국회에 발의된 첨단산업 특화단지 지원을 강화하는 ‘K칩스법 시즌2’ 입법부터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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