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은 처벌 이상의 많은 것을 의미한다. 검찰, 경찰, 특별사법경찰의 수사 대상이 되고 고소·고발장이 접수되면 범죄 혐의 유무와 상관없이 곧바로 피의자 신분이 된다. 피의자 신분이 되는 것은 수사기관 조사에 응할 의무와 함께 체포구속과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대출 연장 불허 등 금융상 불이익도 뒤따를 수 있다. 상장기업은 주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형사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징역 1년 이상의 중형으로 처벌될 수 있지만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과 같이 모호한 규정투성이의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이다. 수사가 일찍 종결되면 좋겠지만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1년 이상 수사가 장기화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경영에 전념해야 할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수사로 인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기업이 수사 대상에 오르면 나중에 무죄로 밝혀져도 이미 발생한 치명적 손해는 돌이킬 수 없다. 1989년 검찰의 ‘공업용 우지(牛脂)라면’ 사건과 2004년 경찰의 ‘쓰레기 만두’ 사건 수사가 대표적이다. 공업용 우지라면 사건은 업체 대표 등이 구속까지 됐지만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국내 1위 라면업체이던 삼양식품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쓰레기 만두 사건도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하려고 준비 중이던 썩은 무말랭이와 단무지를 만두소로 사용했다고 오인한 경찰의 확증편향적 수사가 문제였다. 무책임한 언론 보도까지 겹치면서 수요가 격감했고 많은 제조업체가 도산했다. 그 와중에 한 업체 사장이 한강에 투신자살하는 비극도 있었다.
형벌은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이다. 행정 제재 등 다른 방법을 통해 목적 달성이 불가능할 때만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형사법의 기본정신이다. 기업과 자영업자와 관련된 경제형벌은 더욱 그래야 한다. 과도한 경제형벌은 외국인의 국내 투자에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형사처벌 규정의 홍수다. 414개 경제 관련 법률에 총 5886개의 경제형벌 규정이 존재한다. 행정 목적 달성을 위해 형벌에 너무 의존하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과 형벌만능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 입법도 문제지만 처벌 규정 형평성 등이 적절히 통제되지 않는 의원입법은 더욱 우려스럽다. 2024년 1월 2일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2만5449건의 입법안이 등록돼 있는데 그중 상당수는 경제형벌 규정과 관련된 것이다.
<관자>에 “법으로 삼아야 할 것을 법으로 삼지 않으면 일이 정해지지 않고, 법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을 법으로 삼으면 명령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형벌 제도가 적절하지 않으면 국민이 설 곳을 잃는다. 법을 따르는 까닭은 그 법이 근본적으로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기획재정부·법무부·법제처 합동으로 ‘경제형벌규정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켜 경제형벌 정비에 나선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형벌 규정을 폐지하고 과태료로 전환하는 등 1차는 기업형벌 위주로, 2차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불편함과 관련된 과제 중심으로 140건의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작년 11월까지 국회에서 단 1건만 통과된 답답한 정치 현실이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부설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의 세계경쟁력 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기업법·규제 경쟁력’ 부문에서 64개국 중 61위를 차지했다. 2013년 32위에서 29계단 하락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기능하지 않는 것이고,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규제개혁과 사법제도의 선진화는 저비용 고효율의 소프트파워 혁신이 될 수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경제형벌은 법무부와 법제처의 일관된 형사 정책과 기준에 따라야 한다. 형사처벌할 가치가 있는 위반 행위에 한해 최소한으로 규정돼야 한다. 해석과 적용에 혼란이 없도록 명확하고 예측가능성이 보장돼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개인과 기업이 자신의 꿈과 능력을 모두 펼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불필요한 형벌 규정을 없애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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