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3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일제히 ‘연구개발(R&D) 역량 강화’를 올해 핵심 경영 목표로 내걸었다. 한국이 사실상 독점해온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수익성이 높은 선박 분야 기술력을 중국이 상당 부분 따라잡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보다 싸게 배를 건조할 수 있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선 R&D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1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성안 삼성중공업 부회장(64)은 최근 미래사업개발실을 신설했다. 각 부서에 흩어져 있던 미래사업 업무를 한데 모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다. 미래사업개발실은 선박 운항의 ‘디지털 솔루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선박 기술인 ‘그린 솔루션’ 등을 연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솔루션은 선박의 운항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시스템 성능과 장비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이다. 제조업을 넘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의미다.
미래사업개발실 신설은 작년 말 단독 대표로 선임된 최 부회장이 처음 단행한 조직 개편이다.작년 11월 HD한국조선해양 수장이 된 김성준 부사장(54)은 12년 만에 나온 기술연구원장 출신 CEO다. 그런 김 부사장이 내건 목표가 “‘절대 기술’ 확보”였다. 다른 조선사가 2~3년 내 따라올 수 있는 ‘유효 기술’이 아니라 프랑스 엔지니어링업체 GTT처럼 확고한 지위를 다지는 ‘절대 격차’를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GTT는 LNG 운반선에 꼭 필요한 화물창 기술을 보유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수소연료, 전기추진, 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을 에너지로 쓰는 미래 선박 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을 경쟁업체에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권혁웅 한화오션 부회장(63)은 해상풍력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유상증자를 통해 해상풍력 분야 투자금을 2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늘렸다. 해상풍력 발전기로 생산한 수소·암모니아를 운반선으로 운송해 청정에너지 밸류체인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한화오션은 스텔스 잠수함 등 방위산업 분야 투자도 늘리기로 했다.
조선 3사 CEO가 일제히 ‘기술 초격차’를 내건 배경에는 빠르게 추격하는 중국 조선사들이 있다. LNG 운반선 등 고부가 선박마저 중국 조선사들의 손에 넘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중국 조선사는 2020년만 해도 LNG 운반선을 한 척도 따내지 못했지만 2022년엔 60척을 수주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한국 조선사가 월등하게 잘하던 생산·설계 자동화 분야의 격차도 크게 좁혀진 상태”라며 “지금 R&D에 손 놓으면 LCD(액정표시장치) 디스플레이처럼 중국 손아귀에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