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들이 부스를 차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LVCC)만 들렀다면 당신은 ‘CES 2024’의 절반만 본 것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잘나가는’ 스타트업은 LVCC에서 3㎞ 떨어진 베네시안 라스베이거스에 마련된 ‘유레카 파크’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10일(현지시간) 찾은 이곳은 피자 냄새로 가득했다. 회사 경영부터 연구개발(R&D), 마케팅까지 ‘1인 3역’을 하느라 피자로 끼니를 때우는 스타트업 특유의 냄새가 라스베이거스의 최고급 호텔에서 흘러나온 것.
이곳을 가득 메운 수많은 스타트업 중에서도 단연 인기를 끈 곳은 ‘변기’가 놓인 부스였다. 소변을 누면 곧바로 만성질환을 알려주는 이 변기는 삼성전자의 도움을 받아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현대자동차 후원으로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내놓은 한국 스타트업 부스에도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등 빅테크 거물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다.
‘삼성 후광’ 받은 韓 스타트업
삼성전자가 CES에 한국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무대를 처음 마련한 건 2012년이다. 실력은 있지만 네트워크가 없는 스타트업들에 해외 판로를 열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코로나19 팬데믹 때를 제외하곤 꾸준히 ‘동생’들을 챙겼다.올해도 그랬다. 삼성전자가 R&D와 마케팅을 도와주고 사무실도 제공하는 ‘C랩’ 선정기업 15곳이 라스베이거스행(行) 비행기에 올랐다. ‘AI(인공지능) 변기’로 주목받은 옐로시스도 그중 하나다. 삼성전자 사내벤처였던 이 회사는 이 제품으로 올해 CES 혁신상을 3개나 받았다. 탁유경 대표는 “공중 화장실용 변기는 벌써 주문을 받았다”며 “가정용 변기는 올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비데업체들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C랩 부스에는 온라인으로 각종 동물의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도 해주는 ‘온라인 수의사 서비스’ 업체 닥터테일도 있다. 미국에서만 38만 명이 상담 서비스를 받은, 사업 모델을 어느 정도 인정받은 스타트업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미국에 출시하는 스마트TV에 닥터테일의 수의사 원격 상담 서비스를 적용할 계획이다. 생체 식별 및 인증 솔루션 업체인 고스트패스와 스마트폰 기반 3차원(3D) 콘텐츠 생성 솔루션 기업인 리빌더 AI도 삼성의 측면 지원을 받아 CES 혁신상을 거머쥐며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MS CEO도 찾은 제로원 부스
나델라 CEO가 현대차의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인 ‘제로원’ 부스를 찾은 건 지난 9일이었다. 이곳에 터를 잡은 모빈의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직관’(직접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나델라 CEO는 관련 시장 규모와 타깃층에 관해 물었고, 최진 대표는 “당장은 한국 아파트와 오피스빌딩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답한 뒤 곧장 로봇을 시연했다.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CES 혁신상을 받은 모빈은 현대차에 다니던 최 대표가 2018년 사내 벤처로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같은 기술로 배달뿐만 아니라 택배로봇, 교통로봇, 순찰로봇 등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MS가 모빈을 눈여겨본 이유다.
제로원 부스에는 모빈을 포함해 11개 국내 스타트업이 함께했다. 현대차는 제로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36개 사내 스타트업을 독립기업으로 분사시켰다. 또 128개사 외 스타트업을 발굴, 이 중 97개 업체에 투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세계 ‘큰손’들이 모이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에서 실력을 뽐낸 만큼 한국 스타트업들이 향후 일감을 따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김재후/허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