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장은 4일 서울 여의도동 금감원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태영 측이 전날 제시한 자구 계획은 채권단이 동의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태영그룹이 협력업체나 수분양자, 채권단 손실을 위해 지원하기로 한 최소한의 약속도 지키지 않아 당국 입장에선 우려와 경각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특히 오너 일가가 지주사 지분 유동화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 원장은 “윤 창업회장 등이 보유한 티와이홀딩스 지분을 활용한 유동성 공급이나 담보 제공 등의 자구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너 일가가 사재 출연을 통해 그룹 경영권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각오를 보여줘야 채권단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에둘러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티와이홀딩스는 윤 창업회장이 0.5%, 그의 아들인 윤석민 회장이 25.2% 등 총수 일가가 총 33.7%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티와이홀딩스 아래에는 태영건설(지분율 27.8%)과 SBS(38.1%) 등이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티와이홀딩스 주가는 이날 8.23% 급락한 4405원에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2221억원으로 총수 일가 지분 가치는 750억원가량이다. 태영 측이 인정한 태영건설의 우발채무 2조5000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당국과 채권단이 티와이홀딩스 지분 출연을 압박한 것은 대주주의 책임 이행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협력사·채권단에 손실책임 넘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4일 태영그룹이 전날 내놓은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자구안에 대해 ‘오너 일가를 위한 자구계획’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채권단 입장에서 보면 총수 일가의 핵심 재산인 지주사 티와이홀딩스를 지키기 위한 계획”이라며 “윤세영 창업회장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말했지만, 실상은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질타했다.이 원장은 태영의 최근 행태를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견리망의(見利忘義: 이익을 보면 의리를 잊는다)’에 빗댔다. 그는 “태영건설이 1조원 넘는 이익을 냈고 이 중 상당 부분이 총수 일가 재산 증식에 기여했다”며 “부동산 침체기에 대주주가 아니라 협력업체와 수분양자, 채권단에게 손실을 떠넘기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 원장은 종합환경업체 에코비트와 레저사업체 블루원 매각 등을 담은 기존 자구안의 미비점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에코비트는 상당히 건실한 기업이지만,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다른 대주주가 있고 단기간 내 매각이 성사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자산 자체의 건전성과 별개로 현실성 있는 자금 조달 계획이 없다는 의구심이 제기된다”고 했다.
태영 측이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는 것이 워크아웃의 전제조건이었으나,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신뢰를 잃었다는 점도 비판했다. 이 원장은 “이런 방안을 들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다른 채권자들을 설득하긴 어렵다”며 “1차 채권단협의회가 열리는 오는 11일이 아니라 이번 주말까지는 채권단이 납득할 수준의 자구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 원장은 이달부터 손실이 본격적으로 확정되는 홍콩H지수 기초자산 주가연계증권(ELS)과 관련해 주요 판매사 검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