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 자기는 그보다 더한 벌을 받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다. 피눈물을 쏟으면서 저 말을 배웠다. 은행에 다닌 지 오래지 않아 내 이름으로 집 매매계약을 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돈은?”하고 빤히 쳐다봤다. 집 담보로 대출해준 기업체가 부도나 연체됐다. 대출이 나간 지 1년도 안 돼 연체가 되자 승진을 앞둔 담당자들이 곤란해졌고 경매로 가기 전에 내가 매입해 연체 정리를 하는 게 좋겠다고 권해 인수했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대금은 은행 대출을 받아 처리할 거다”란 말을 하는 중에 아버지가 담배 재떨이를 내던졌다. 정수리에서 바로 피가 났고 눈물도 났다. 그때 피눈물을 흘리는 내 머리 위로 아버지가 쏟아낸 말이다.
부도로 경영하던 기업을 은행이 강권해 넘긴 경험이 있는 아버지는 옛일을 떠올리며 “그게 은행이 욕먹는 이유다”라며 그때 하지 못했던 험한 말들을 마구 퍼댔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아버지의 질타다. “은행원이 옹졸하다. 잔혹하기 그지없다. 야비한 집단이다. 협잡꾼들 집합소다. 편협하기 이를 데 없다. 상처 난 데 소금 뿌리는 놈들이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그렇게는 안 한다. 지네들도 장사하는 놈들인데 상도(商道)란 게 없다”라며 그런 걸 강요하는 직장이라면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내가 손수건으로 피눈물을 찍어내는 걸 개의치 않고 야단치던 아버지는 “집은 제2의 옷이다”라고 정의했다. 설명을 이어나갔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거기 사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곳이다. 사람의 삶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특히 편안하고 안락한 그 안식처 안에서 가족, 친구, 추억 그리고 미래의 꿈도 꾸는 공간이다”라며 집에 대한 설명을 길게 했다. 아버지는 “집은 함부로 사는 게 아니다. 그런 둥지를 작당해서 마련한들 거기서 어떻게 안심하고, 무슨 꿈을 꾸겠느냐”고 질책했다.
“더 큰 문제는 이웃이다”라고 한 아버지는 “집은 울타리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지키는 것이다”라고 했다. “골목에 사는 이웃은 네가 그 집을 어떻게 사들였는지를 모두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편안한 삶을 그 집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인용한 고사성어다. ‘거처를 정함에 반드시 이웃을 가리라’는 ‘거필택린(居必擇隣)’이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관리가 정년퇴직을 대비해 자신이 살 집을 보러 다녔다. 그는 지인들이 추천해준 집은 모두 마다하고 집값이 현시세로 백만금(百萬金)밖에 되지 않는 집을 천백만금(千百萬金)을 주고 사서 이사했다. 이야기를 들은 이웃집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사람이 이유를 묻자 그가 한 대답이다. “저는 평소 여선생님의 훌륭한 인품을 존경하고 흠모해 죽기 전에 선생님 가까이에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백만금은 집값으로 지급했고(百萬買宅), 천만금(千萬金)은 선생님과 이웃이 되기 위한 값(千萬買隣)으로 썼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습니다.”
좋은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이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강조한 아버지는 “남에게 해를 끼치면 결국 자신에게 해가 돌아온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이튿날 바로 계약을 내가 깼다. 계약금은 고스란히 위약금으로 쓰여 돌려받지 못했다. 아버지께 파약(破約)했다고 했지만, 한동안은 아침 인사도 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집을 매입한 경위나 사정보다도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내 ‘마음’을 문제 삼았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나이 30이 넘어 반평생을 살았는데도 그 정도로밖에 자라지 못했냐”며 걱정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말없이 서 있는 집마저도 이웃이 있다. 그런 이웃을 내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은 당당함에 있고, 당당하자면 공정해야 한다. 속 보이는 얕은 꾀와 수작으로 얻을 수 없는 게 공정심(公正心)이다. 공평하고 올바른 마음인 공정심을 나는 피눈물을 흘려 깨달았지만 피나게 노력해 다져놔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40년이 지나 내 딸 결혼식장에 그때 해약했던 집 주인은 베어링 업계 큰 기업 회장이 돼 비서를 보내 축하해줬다. 거동 못 하는 그는 ‘눈물을 닦아준 은행원’으로 나를 수소문해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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