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장 동력인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물가도 2021년 이후 3년 만에 2%대로 떨어지며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금리 여파로 내수가 둔화하는 가운데, 소비와 투자는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다.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과 중국의 경기 둔화, 기상이변 등 ‘리스크’는 여전히 첩첩이 쌓여 있다.
반도체 중심 수출 회복 속도가 관건
한국의 올해 경제 상황에 대한 주요 기관들의 시각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전 세계 주요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대부분 지난해보다 하락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처럼 물가가 안정되는 상황에서 성장률이 높아지는 사례는 드물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12월 방한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도 한국의 올해 전망에 대해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성장세”라는 우호적인 평가를 내놨다. 주요 기관들은 올해 우리 경제가 2%대 초반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한국 경제 성장률이 2023년 1.4%에서 올해 2.1%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2%로, OECD는 2.3%로 내다봤다. 정부(기획재정부)의 공식 전망치는 2.4%다.다만 올해에도 한국 경제의 반등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도 존재한다. LG경영연구원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8%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클레이스, HSBC, 노무라증권 등 외국계 투자은행들도 1.9%를 제시했다.
전망의 차이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 속도에 대한 시각에서 비롯됐다. 비교적 후한 2.3%의 성장을 전망한 OECD는 반도체 수요가 저점을 통과하면서 한국의 수출이 개선될 것이란 점을 핵심 근거로 들었다. 글로벌 교역 성장률이 지난해 1.1%에서 올해 2.7%로 회복됨에 따라 무역이 경제성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한국도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반도체 수출은 95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2.9% 증가하며 16개월 만에 증가로 돌아섰다.
1%대 성장을 예측한 기관들은 수출 회복 속도가 생각만큼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고금리 여파와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으로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한국의 수출 회복세가 제약되고, 고금리, 고물가에 따른 내수 부진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가 안정세…고금리에 소비·투자 부진
반도체와 수출 위주의 성장이 대기업 중심으로만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1% 성장을 점친 한은 역시 부문에 따라 경제 회복 체감 정도가 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할 경우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7%에 불과하다.물가는 내려가지만 고금리 여파가 이어지면서 내수는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이 1.8%로 지난해(1.9%)보다 떨어지고, 설비투자 증가율도 2.4%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악재가 산적한 건설투자는 1.0% 감소하면서 내수를 위축시킬 전망이다.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고금리 부담까지 겹쳐 만만찮은 한 해가 될 수 있다.
KDI에 따르면 내수 둔화에 따라 취업자 수 증가폭은 21만 명 수준으로 지난해(32만 명)보다 줄어든다. 60대 이상 노인,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면서 지난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실업률(2.7%)도 올해 3.0%로 반등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은 크게 진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관들은 2022년 5.1%로 고점을 찍고 지난해 3%대 중반대로 떨어진 물가 상승률이 올해는 2%대 중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2%대로 떨어지는 것은 2021년(2.5%) 이후 3년 만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안정적인 대외 여건이 유지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황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