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클릭 몇 번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일상이 된 시대다. 빨간 우체통은 자취를 감췄고, 꾹꾹 눌러 쓴 손 편지는 옛 추억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옛것의 아름다움에 빠져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 27년 차 에테가미(繪手紙) 작가인 후쿠마 에리코(62·사진)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에테가미는 일본어로 그림을 뜻하는 ‘에’와 손 편지를 뜻하는 ‘테가미’의 합성어로, 직접 그린 그림에 짧은 시구를 더한 엽서를 말한다.
최근 에세이집 <에테가미>를 펴낸 후쿠마를 서울 이촌동 자택에서 만났다. 토종 일본인인 그는 1994년 재일동포 출신인 양용웅 전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장과 결혼하면서 한국과 연을 맺었다. 양 전 회장은 1982년 재일동포를 끌어모아 신한은행 창립을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으로, 2001년 신한금융지주회사 설립 뒤 사외이사 등을 지냈다. 후쿠마는 이런 남편을 따라 2017년 한국에 들어온 뒤 전국 40여 개 학교에서 강좌를 열고, TV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에테가미 보급 운동을 펼쳤다.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일본에선 에테가미 인구가 2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그림 편지로 안부를 묻는 전통 풍습을 1979년 서화가 고이케 구니오(1941~2023)가 재유행시켰다. 후쿠마도 이 무렵 에테가미를 접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남편 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언어 장벽이 있었다”며 “꽃과 과일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그린 뒤 어설픈 한글로 ‘감사합니다’라는 글씨를 눌러 썼다”고 했다.
후쿠마는 1996년부터 고이케 문하에서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스승이 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그림 없이 이런 글만 적혀 있었다. ‘한국에 에테가미를 널리 알려다오. 나도 마지막까지 힘을 보태겠다.’ 후쿠마는 “고이케 선생님은 오랜 암 투병으로 기력이 다한 순간까지도 손 편지를 썼다”며 “힘이 없어 삐뚤빼뚤 적힌 글자였지만, 선생님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후쿠마 작품의 특징은 에테가미에 한국적인 요소를 더했다는 점이다. ‘목인 1·2’가 대표적이다. 한국 전통 장례문화인 상여의 장식으로 쓰인 꼭두각시 인형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정적인 일본 인형보다 역동적이고 해학적인 표정을 지닌 한국 꼭두각시 인형에 매료됐다”고 했다.
한국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코로나19로 국경이 닫혔을 때는 일본의 가족과 한참을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때마다 에테가미로 마음을 달랬다. 후쿠마는 1년간 매일 고향의 부친과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던 기록을 모아 2020년 <88세의 손그림편지 365일>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에테가미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진심’을 꼽았다. 정성 어린 마음만 있다면 그림이나 서예 실력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에테가미는 작품성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교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그림이 난잡해지고, 오히려 진심이 가려질 수 있죠.”
그에게 ‘숨 가쁘게 돌아가는 시대에 느릿한 손 편지의 가치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이런 답을 들려줬다. “SNS 메시지는 기억에서 금방 사라지지만, 정성 들인 손 그림 편지는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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