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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 사이에서 ‘파산 쓰나미’가 일고 있다. 고금리로 자금 조달 환경이 급격히 악화한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좀비 기업’들을 연명하게 했던 정부 지원금이 끊긴 것이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간) 각국 통계청과 법원 자료를 인용해 올해 1~9월 미국의 기업 파산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 수치는 2010년 이래 2019년을 제외하면 매년 마이너스를 기록하다 올해 큰 폭으로 반등했다.
같은 기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에서도 파산한 기업 수가 전년 대비 13% 많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8년 만에 최고치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선 무려 25%의 증가율이 확인됐다. 독일 통계청 데스티타스는 “지난 6월부터 매달 전년 대비 두 자릿수의 증가율이 지속해서 관찰됐다”고 밝혔다. 이 밖에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등에서도 30% 넘는 증가율이 나타났다.
현 상황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하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덴마크(144.51, 100=2008~2009년), 스웨덴(132.28), 영국(112.62), 스페인(112.87), 핀란드(108.76), 노르웨이(107.67) 등에서 금융위기 때보다 파산 건수가 늘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10월까지 12개월간 전 세계 투기등급(투자부적격등급) 기업의 부도율을 4.5%로 집계했다. 과거 평균치인 4.1%를 웃도는 수준이다. 미 대형 약국 체인 라이트에이드, 벨기에 소매업체 아이디얼스탠다드인터내셔널, 영국 금융회사 하야홀드코2 등이 파산 대열에 오른 대표 사례들로 거론된다.
영국 컨설팅 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정부 지원금으로 회생할 수 있었던 좀비 기업들이 고금리 시대를 맞아 하나둘 스러진 영향”이라며 “에너지 집약 산업에선 비용 부담이 한층 커졌고, 교통?서비스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도 높은 파산율이 나타났다”고 짚었다.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 종료 시그널로 주요국 금리는 정점에 다다랐다는 평가지만, 실제 금리 인하까지는 수개월이 소요될 거란 전망이다. 기업들의 줄파산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거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독일의 금융 서비스 업체 알리안츠는 전 세계 디폴트(채무불이행) 증가율(전년 대비)이 올해 6%에서 내년 10%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 건설 등 금리 수준에 민감한 업종들에서 부채 상환 부담이 특히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몇 년에 걸쳐 전 세계 경제와 각국 고용 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자산운용사 하그리브즈랜즈다운의 수잔나 스트리트 수석 애널리스트는 “급격한 긴축 정책은 좀비 기업뿐 아니라 장기 성장 잠재력이 있는 유망 스타트업(창업 기업)과 중소기업들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에너지 부문 보조금을 비롯한 여러 정부 조치가 또 한 번 기업들을 구제할 거란 반론도 있다. 알리안츠리서치의 기업 파산 부문 연구팀장인 막심 르메르는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의 파산 건수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라며 “각국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인 데다 기업들은 저금리 기간 충분한 현금 여력을 확보해 뒀으며, 세계 경제는 지속해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