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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올림픽金 경험 살려 선수와 IOC 가교 역할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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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모습으로 경쟁자들을 기죽이던 ‘침묵의 암살자’가 맞나 싶었다. 인터뷰하는 내내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고, 눈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골프 여제’ 박인비(35)는 “요즘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18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제 8개월 된 딸이 주는 기쁨이 정말 크고,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의욕이 샘솟는다”고 했다. 선수로서 은퇴설도 일축했다.

박인비에게 새로운 도전이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다. 선수위원 후보 자격을 얻어 내년 8월 파리올림픽에서 치러질 선거를 앞두고 있다. 올림픽 출전 선수 1만여 명의 현장 투표를 거쳐 상위 4명이 전 세계 올림피언을 대표하는 ‘스포츠 외교관’의 자격을 얻는다. 박인비가 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IOC 선수위원에 당선되면 한국 여성으로도, 전 세계 골프선수로서도 역대 최초가 된다.

박인비는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메이저 7승을 포함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통산 21승을 거뒀다. 2015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116년 만에 골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부활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내 골프선수로는 처음으로 ‘커리어 골든 슬램’을 이뤄냈다. 그는 골퍼로서 빼어난 경력에 더불어 영어와 연설 실력까지 높이 평가받아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한국 후보로 선발됐다.

박인비가 IOC 선수위원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리우올림픽부터다. 그는 “선수 생활을 20년 넘게 하며 메이저 대회를 비롯해 큰 무대를 여러 번 경험했지만 올림픽은 정말 달랐다”며 “각 종목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만나고 경쟁하는 하루하루가 짜릿했다. 올림픽이 왜 인류 최대의 축제인지 하루하루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리우올림픽에서 3라운드를 마친 뒤 박인비는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서는 순간을 간절하게 꿈꿨다고 한다. 그는 “애국가가 울리는 순간을 꼭 만들어내고 싶었다”며 “그런 욕심을 가진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인비는 최종라운드에서 내내 압도적인 플레이를 이어가며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올림픽에서 받은 감동은 쉽게 떠나지 않았고 자연스레 IOC 선수위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운 좋게 임신과 출산으로 투어를 쉬고 있는 올해 IOC 선수위원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며 “올림픽과 선수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위원 도전을 위한 준비는 일찌감치 시작됐다. 학창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 영어가 유창하다. 하지만 ‘스포츠 외교관’으로서 필요한 고급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올림픽의 역사와 조직에 대해서도 공부할 것이 많다고 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 현장을 찾아 국가대표 선수들과의 스킨십도 늘렸다. 박인비는 “선수들에게 박인비라는 사람을 최대한 알리고 좋은 인상을 남기는 수밖에 없다”며 “현장을 열심히 찾아 한 명이라도 더 악수하고, 눈을 맞추며 인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임신과 출산으로 투어 활동이 뜸해지면서 박인비에게는 은퇴설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는 “은퇴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와 LPGA투어 모두에서 영구 시드권을 갖고 있어 투어 활동의 문이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분간은 IOC 선수위원 선거에 집중해야 해 투어 복귀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인비를 필두로 LPGA투어를 호령했던 한국 여자골프는 최근 몇 년 사이 위기론에 시달리고 있다. 태국과 중국이 빠른 세대교체를 앞세워 도전해오는 사이 한국 선수의 LPGA투어 진출이 뜸해진 탓이다. 박인비는 “지난 몇 년간 어린 선수들의 진출이 더뎌진 결과가 지금 터져나온 것”이라며 “선수들이 더 큰 무대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는 문화가 골프산업 전반에 생겨야 한다”고 진단했다.

내년에는 KLPGA투어에서 임진희(25), 이소미(24), 성유진(23) 등 3명의 정상급 선수가 LPGA투어에 진출한다. 박인비는 “어린 선수들의 도전이 정말 반갑고 고맙다”며 “후배들이 주눅 들지 않고 덤볐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문화가 낯설고 언어의 장벽이 있지만 아직 어리고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나이 아닌가요. 오픈 마인드를 갖고 항상 소통하려고 노력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무대예요. 한국의 여자, 남자 골프는 그만한 저력이 있습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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