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지출 줄여 셧다운 피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사회민주당)와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녹색당),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자유민주당)은 13일(현지시간) 내년 예산안에 관한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연립정부가 막판 예산 협상을 타결하면서 독일은 내년 1월의 재정 셧다운을 피하고 170억유로의 ‘예산 구멍’을 막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독일 헌재는 지난달 15일 독일 정부의 올해와 내년 예산이 헌법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헌재는 2021년 연립정부가 수립되면서 코로나19 대응에 쓰이지 않은 600억유로를 기후변환기금(KTF)으로 전용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신규사업에 투입하기로 한 걸 위헌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KTF를 위한 국채 발행이 불가능해졌다. 독일 내각은 이에 448억유로 규모로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해 급한 불을 껐지만, 내년 예산안에서 170억유로 부족분을 어떻게 보충할지를 두고 협상을 벌여왔다.
오랜 협상 끝에 이날 공개된 내년도 예산안에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 및 건설 보조금, 산업 지원 조치 등에 대해 지출을 삭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내년 KTF 지출 계획은 120억유로 삭감되고 주택 소유자에 대한 환경 보조금도 축소된다. 친환경 부문에서의 지출 삭감에 대응하는 조치로 오염 산업군에 할당된 30억유로의 보조금도 함께 깎일 예정이다.
숄츠 총리는 이날 내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내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소폭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독일 경제에 더 어려운 환경이 닥칠 것”이라고도 했다. 외르크 크뢰머 코메르츠방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협상으로 내년 독일 경제성장률에 최대 0.5%포인트의 악영향이 갈 수 있다”고 했다. 독일 경제의 문제점 중 하나는 만성적인 투자 부족인데, 헌재의 지난 결정으로 국가가 예산 외 자금을 끌어다 투자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은 계속
정부는 예산 대란을 초래한 주범 중 하나로 지목돼 온 ‘국가부채 제동 장치’에 대해서는 폐지하지 않기로 했다. 2009년 독일 헌법에 규정된 해당 제동 장치는 정부가 GDP의 0.35%까지만 새로 부채를 조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이 장치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위기 상황이 계속됨에 따라 지난 4년간 중단됐다.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황이 악화하면 우리는 부채 제동 장치를 또다시 중단해 긴급 자금을 추가로 조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일은 본예산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 80억유로, 독일 내 우크라이나 난민에 6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철도 운영에 대한 정부 지원도 줄이되 대신 철도망 주변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부족분을 메울 계획이다. 린트너 재무장관은 “이번 예산안 타결은 독일이 재정 통합 과정에 전념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며 “내년에는 GDP 대비 독일 정부의 재정 적자 비율이 1.5%로 다시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재정 적자 비율은 2021년 3.6%까지 치솟은 바 있다. 독일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부채가 가장 작은 국가지만, 2차 세계대전과 통일 과정에서 큰 비용을 쓴 경험이 있어 재정 적자를 예민하게 관리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