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14일 16:1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에서 해외 채권을 총괄하는 실장급 운용역이 퇴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 자산군을 총괄하는 실장급 이상 운용역이 사표를 낸 것은 지난 5월 이후 7개월여 만이다. 국내외 부동산 투자를 담당하는 수장에 외부 인사를 임명한 데 이어 퇴사까지 연달아 발생하며 조직이 술렁이고 있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전날 오후 이호선 해외채권실 해외국공채팀장을 해외채권실장으로 승진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정재영 해외채권실장이 최근 사표를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정재영 실장은 3년여간 해외채권실장을 이끌어온 베테랑 운용역이다. 해외채권실은 해외 채권 투자 강화를 위해 해외증권실에서 분리, 격상된 부서다. 런던사무소장이었던 정 실장은 지난 2021년 1월 해외채권실 격상과 함께 부서를 총괄해왔다.
아울러 국민연금은 안준상 전 이도 부사장(사진)을 신임 부동산투자실장으로 임명했다. 부동산투자실은 사모·벤처투자실, 인프라투자실과 함께 국민연금 대체투자를 이끄는 3개실 중 하나다. 국민연금의 부동산 투자 규모는 지난 9월 말 기준 52조1000억원에 달한다. 기존에 부동산투자실을 이끌던 오은정 실장은 뉴욕사무소장으로 이동했다. 당초 오 실장은 윤혜영 뉴욕사무소장 직무대행이 퇴사하면서 뉴욕사무소장을 겸하고 있었다. 인사 발령일은 오는 18일이다.
안 신임 실장은 수석급 운용역으로 채용돼 정식으로 보직을 받게 됐다. 수석 운용역은 부문장·실장급으로 직급 중 가장 높다. 안 신임 부동산투자실장은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를 졸업하고 코넬대학교에서 부동산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부동산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삼성생명,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홍콩·싱가포르 이사, 캐나다왕립은행과 웰스파고은행 홍콩 부동산자산 자본시장 담당 상무를 지냈다. 이후 삼성증권 IB 대체투자본부장, 이도 부사장을 역임했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실장급 운용역의 이탈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실장급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있어서다. 실장급 이상 운용역 퇴사는 지난 5월 기금운용본부 ‘넘버2’에 해당하는 박성태 전 전략부문장 퇴사 이후 7개월여 만이다. 국민연금 실장급 인력은 기금본부 전주 이전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 당시 대거 퇴사했다. 이후에도 2020년 최성제 수탁자책임실장, 2021년 김현수 부동산투자실장, 김지연 인프라투자실장 등 핵심 운용역의 줄퇴사가 이어졌다.
내부에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기존 실장을 해외 사무소장으로 보내고 외부 인사를 앉힌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공석이 아닌 실장 자리에 외부 인사를 기용한 전례가 없을 뿐더러, 신임 실장이 주로 부동산 브로커리지(중개)나 해외 채권 영업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부동산투자실장은 국민연금의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직접 투자하는 ‘큰손’ 역할을 한다.
국민연금 내부 운용역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내부 실장을 해외 사무소장으로 보내고 외부 인사를 꽂은 셈이라 사기가 꺾이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실장급들은 팀장을 달기 전 국민연금에 입사해 장기간 업무를 익히는 과정을 거친다. 국민연금 기금본부 내 운용 부서인 7개실(주식운용·채권운용·해외주식·해외채권·사모벤처·부동산·인프라) 실장들은 모두 팀장에서 실장으로 내부 승진한 케이스다. 기존 오은정 실장이 이동하는 뉴욕사무소장은 보통 실장으로 승진하기 전 단계에 거치는 자리로 여겨진다. 박성태 전 부문장도 뉴욕사무소장으로 발령난 뒤 사표를 낸 바 있다.
한 국민연금 출신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사들이 퇴사하거나 물러나면서 혼란스러워 하는 분위기”라며 “갑작스러운 상황에 운용역들의 사기가 꺾이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조직 분위기를 일신하려는 의미를 갖는 인사”라고 설명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