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음원저작권(IP)·미술품 등 실물자산을 소액으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조각투자 거래 시장이 조만간 열릴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한국거래소가 추진 중인 신종증권 상장 시장 시범 운영안에 대해 규제특례를 부여하면서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정례회의를 거쳐 거래소의 투자계약증권·비금전신탁수익증권 장내 시장 시범 운영 방안을 포함한 10건을 혁신금융서비스(규제 샌드박스)로 최종 선정했다. 유통 시장에 대한 규제가 일시적으로 풀리면서 시장 개화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 열기는 이미 주식 시장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샌드박스 지정은 첫 관문 통과일뿐,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까지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거래소가 시범 시장 운영 준비를 마쳤더라도 한국예탁결제원 내 시스템 구축 등의 후속 절차가 뒷받침돼야 해서다. 또 유통 시장이 마련됐다고 해도 모든 투자계약증권이 장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상장 시장에서 거래돼도 이상 없는지 거래소 심사를 추가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남았다.
조각투자 상품, 앞으로 거래소서 사고판다는데…
비정형증권의 장내 유통 시장 개설 건이 혁신 금융서비스로 지정됐다. 혁신금융서비스는 기존 사업보다 혁신성과 차별성이 뛰어난 금융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 규제 특례를 인정해주는 제도다. 당장 정식 법제화 없이도 투자계약증권·비금전신탁수익증권으로 발행된 조각투자 상품의 장내 시장 거래가 가능해졌다. 투자계약증권·비금전신탁수익증권 거래 시장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내 개설될 예정이다. 거래소는 내년 상반기 중 장내 거래 시장 출범을 목표로 각종 시스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행법상 투자계약증권을 비롯한 비정형증권의 유통 시장은 개설될 수 없다. 발행·유통 겸업 금지 원칙에 따라 발행사가 별도로 유통 시장을 열 수도 없다. 지난 7월 금융당국은 미술품·한우 조각투자 업체 5곳(서울옥션블루·스탁키퍼·열매컴퍼니·테사·투게더아트) 제도권 안으로 들이면서 증권 발행 등의 영업 재개를 허가했지만, 동시에 증권 발행회사가 기존 보유한 유통 시장을 폐지하란 조건을 붙였다. 그렇다고 발행사와 구분된 별도의 유통 플랫폼이 마련된 것도 아니다. 증권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 자체가 없었단 얘기다.
하지만 법 개정 전 금융위가 거래소의 장내 시장 시범 운영안에 규제 특례를 부여하면서 비정형증권 유통 시장 개설의 물꼬가 트였다. 시장 개화 기대감은 진작에 주식 시장에 반영됐다. 대표 조각투자 관련주인 케이옥션과 갤럭시아머니트리는 이달 들어서만 무려 62%, 60% 각각 폭등했다. 케이옥션은 자회사 투게더아트를 통해 조각투자 사업에 뛰어들었다. 갤럭시아머니트리는 수산금융, 경주마 등 다양한 산업의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해 투자계약증권 발행·유통을 준비하고 있다.
예탁원 등 후속절차 있어야…본격 거래까진 시간 걸릴 듯
업계에선 '토큰증권'의 유통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소가 추진 중인 장내 시장 거래 대상이 되는 비정형증권은 엄밀히 말하면 토큰증권이 아닌 만큼 이 두 개념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장 신종증권은 기존 '전자증권' 방식으로 유통된다. 토큰증권과 전자증권을 가르는 핵심은 분산원장 기술이다. 토큰증권은 분산원장을 장부로 활용하지만, 전자증권은 그렇지 않다. 즉, 분산원장을 쓰지 않으면 토큰증권이 아니다.장내 시장이 열리려면 후속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비정형증권이 전자증권 형태를 갖춰야 한단 점에서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해 전자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업계선 아직 예탁원이 전자등록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예탁원 관계자는 "업계, 정책당국과 논의해 투자계약증권의 전자 등록 발행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며 "한국거래소 장내 시장 개설 시점에 맞추는 것을 목표로 예탁결제원도 투자계약증권의 전자등록 수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반 주식은 전자등록을 위해 명의개서대리인 선임, 발행인관리계좌 개설신청, 예탁원 사전 심사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절차에 통상 50일가량 걸린다.
장내 거래 시장이 열리더라도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승인이 난 투자계약증권을 곧바로 사고팔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반 상장 종목이 거래소의 예비심사청구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투자계약증권도 상장에 앞서 거래소의 심사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 신종증권의 상장 시장은 기존 전자증권 방식으로 운영하는데, 거래소는 현행 매매?청산?결제 인프라를 동일하게 활용할 예정이다. 분산원장의 처리속도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토큰증권 형태로 거래될 것으로 점쳐지는 장외 거래 플랫폼도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진 개설의 근거가 없다. 지난 7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발의한 개정안은 5개월가량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시장 개화 기대감이 가득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법 개정은 당분간 답보 상태에 빠질 것이란 전망도 추가로 제기된다.
증권 거래 얼마나 할까…의문스런 시각도
업계 일각에선 유통 시장 개설에 대해 의문점을 품고 있다. 투자계약증권 거래가 장내든, 장외에서 이뤄지든 그 수요가 얼마나 많을지도 미지수란 것이다. 이는 당초 매각 차익을 노린 투자자가 많은 미술품·한우 거래 시장 특성과 관련이 있다. 최근 제출된 조각투자 업체의 증권신고서를 살펴보면 만기가 최소 3년이며, 만기는 연장될 수도 있다. 조각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조각투자를 시작한 투자자들은 작품 매각 차익을 바라고 장기 투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유통 시장이 열린다고 한들, 증권 거래를 원하는 투자자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작품 매각 시점의 증권 가치와 미술품 가치가 차이가 나는 경우도 고려해볼 만한 문제다. 예를 들어 주당 10만원에 청약한 증권이 2배 올라 20만원이 됐지만, 정작 작품 가격에 대한 시장에 평가가 이에 못 미칠 수 있다. 유통 시장에서 가격이 2배 뛴 투자계약증권을 매수한 투자자는 기초자산의 가격이 그 이상 상승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게 된다.
만약 손실 구간에 있는 투자자의 지분 영향력이 크고, 이들이 투자자 총회 등을 통해 기초자산의 처분을 반대한다고 가정하면, 해당 자산의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엔 또 매각 차익을 간절히 바라는 애먼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유통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인 투게더아트 관계자는 "수시 공시를 통해 감정된 미술품 가격을 밝혀 증권 가격과의 균형을 맞추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조각투자 업체들은 유통 시장 개설을 앞두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조각투자 시장 선두주자로 꼽히는 투게더아트는 장내 유통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사전 준비로 증권사를 통한 실명 청약전용계좌 개설을 진행하고 있다. 스탁키퍼 측도 증권사와 협업해 출범이 예고된 거래소 장내 시장에 진출하겠단 계획을 밝혔다. 열매컴퍼니, 서울옥션블루는 아직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지만, 유통 시장 진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단 입장이다.
현재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조각투자업체는 투게더아트, 서울옥션블루, 열매컴퍼니 등 3곳이다. 한우 조각투자 플랫폼 뱅카우를 운영하는 스탁키퍼는 다음주 중으로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아직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기업은 있지만, 금융감독원의 문턱을 넘은 곳이 없었던 만큼 일단 시장 상황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미술품 조각투자 업체 테사는 내년 초 중으로 증권신고서 제출을 검토하고 있다. 안재현 스탁키퍼 대표는 "한우 사육 특성상 한번 증권신고서가 반려되면 매몰 비용이 크기 때문에 금융당국과 긴밀히 소통하며 신중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신현아 /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