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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꼽히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취임식을 열고 4년 임기를 시작했다. 살인적인 물가상승률과 40%대 빈곤율 등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내려질 밀레이 대통령의 ‘극약처방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르헨티나 재건 시동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부에노스아이레스 연방의회에서 전통에 따라 퇴임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으로부터 어깨띠를 넘겨받고 선서를 하면서 대통령직에 올랐다. 그는 선서 이후 별도의 연설 없이 퇴장했다. 연방의회에서 취임 선서 후 별도 메시지를 내지 않은 대통령은 1983년 민주화 이후 밀레이 대통령이 처음이다.대신 밀레이 대통령은 광장으로 나와 “오늘날 우리는 쇠퇴에 쇠퇴를 거듭한 길고 슬픈 역사를 끝내고 우리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됐다”며 취임사를 전했다. 이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험난한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강력한 경제 개혁 의지를 보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밀레이 대통령은 지출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급진적인 변화만이 아르헨티나를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보다 더 나쁜 유산을 받아 든 정부는 없다”며 “재정 및 수출에서 쌍둥이 흑자를 자랑하던 전 정부는 오늘날 우리에게 국내총생산(GDP)의 17%에 달하는 쌍둥이 적자를 남겼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대로라면 아르헨티나는 연간 1만500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겪을 위험에 직면한다”며 “우리 정부는 초인플레이션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정부가 1000억달러에 이르는 부채 폭탄도 지고 있다”고 언급하며 “GDP의 5%에 달하는 공공부문 재정 조정을 비롯해 강력한 경제난 극복 정책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했다. 또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약속하며 “국가를 전리품으로 간주해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모델은 종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부처, 18개서 9개로 축소
그는 취임 후 예상과 달리 집권 초반 내각을 온건파로 꾸렸다. 그의 핵심 공약인 ‘달러화 도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던 루이스 카푸토를 경제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그는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2015∼2019년)에서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인물이다. 중앙은행 총재 내정자도 달러화 도입에 앞장섰던 에밀리오 오캄포 유세마대 교수 대신 산티아고 바우실리 전 재무장관을 낙점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에서 반대 정파를 끌어들여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환경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는 기존 18개 정부 부처를 9개로 줄이는 부처 슬림화도 단행했다. 사회개발부, 노동사회보장부, 공공사업부 등 진보 정권에서 목소리가 컸던 부처들이 폐쇄됐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취임식 직후 정부 부처 장관들을 비공개로 임명했고, 여동생 카리나 밀레이를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선거 캠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카리나가 정권 2인자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밀레이 대통령은 카리나를 비서실장으로 앉히기 위해 규정까지 손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밀레이 대통령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출신인 극우 성향 정치인으로,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2년 만에 대통령이 됐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