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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등장한 美 IRA 공급망 리스크…K배터리 "내실 다질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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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 자본의 지분율이 25%를 넘는 합작사를 ‘해외우려집단(FEOC)’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업계가 지분율 조정 등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배터리 핵심 소재에 대한 대(對)중국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면 내년부터 미국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지난 1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FEOC에 대한 세부 규정안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배터리 부품, 핵심 광물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고,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 IRA에 따라 최대 7500달러, 우리 돈으로 약 10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이 혜택을 받기 위해 분리막, 전해질 등 배터리 부품은 2024년, 배터리 양극재와 음극재에 들어가는 니켈·리튬·흑연 등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FEOC에서 조달하면 안 된다. 이번 발표에는 중국 정부와 관련된 합작회사 지분율이 25% 이상인 경우도 포함됐다.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강화를 위해 지난 8월 발효한 ‘반도체지원법’(칩스법)과 같은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LG화학, 中과 최다 합작

FEOC 발표로 특히 배터리 가격에 40~5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인 양극재 기업들의 사업 전략에 먹구름이 끼었다. 국내 양극재 기업 중 엘앤에프를 제외하고 LG화학,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은 모두 중국 기업과 합작을 진행 중이다.

가장 큰 규모로 중국과 합작 공장을 진행 중인 곳은 LG화학이다. LG화학은 현재 코발트 생산 1위 기업 중국 화유코발트와 1조2000억원을 들여 전북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5000억원을 투자해 경북 구미에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새만금 공장의 경우 현재 지분율은 논의 단계다. 구미 양극재 공장은 중국 화유코발트가 49%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양극재를 북미 시장용으로 수출하려면 LG화학은 내년 말까지 최소 24%포인트의 지분을 화유코발트로부터 사 와야 한다.

LG화학 측은 지난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만약 중국 회사 지분이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는 내용으로 FEOC가 규정된다면 필요시 화유코발트 지분을 전량 인수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고금리·고물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수천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석유화학이 주된 사업인 LG화학은 석유화학 산업 부진과 최근 진행한 외화 교환사채(EB) 발행 등으로 재무적 여유가 크지 않다. LG화학 측은 FEOC 발표 이후 “현재는 FEOC 의견 제출 및 조정 기간으로 유권 해석을 거쳐 추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셀부터 소재 업체들 잇따라 속도 조절

화유코발트와 글로벌 1위 전구체 기업인 중국 CNGR 등과 협력 중인 포스코그룹도 합작사 지분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또 특정 공장 제품은 북미 외 지역용 배터리에만 판매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6월 중국 CNGR과 니켈·전구체 생산을 위해 1조5000억원을 투자해 경북 포항에 합작 공장을 짓기로 했다. CNGR의 니켈 정제 법인의 지분율은 40%, 전구체 생산 법인 지분율은 80%에 달한다. 포스코홀딩스가 화유코발트와 합작한 폐배터리 재활용 회사 HY클린메탈은 중국 측 지분율이 35%다. 에코프로는 SK온과 중국 전구체 생산기업인 거린메이(GEM)와 새만금에 전구체 생산을 위한 3자 합작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 합작법인 역시 SK온과 에코프로의 지분율 합계가 75% 이상이 되도록 지분을 조정해야 한다.

FEOC 발표로 투자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지만 배터리업계에선 “내실을 다질 기회”가 생겼다는 말도 나온다. 수년간 거듭된 대규모 투자와 그에 따른 재무 부담, 가동률 저하, 인력 수급 등 ‘과속 부작용’을 바로잡고 숨을 고르며 필요한 준비를 더 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LG화학은 배터리 소재 기업으로 체질을 전환하기 위해 2025년까지 설비투자(CAPEX)에만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에코프로의 양극재 계열사 에코프로비엠이 2027년까지 계획해둔 설비투자 규모는 7조1000억원에 육박한다.
국내 기업 투자 속도 조절…LG엔솔-포드, 배터리 합작공장 철회
고려아연·엘앤에프 신·증설 미뤄…포드-SK온, 美 공장 가동도 연기

중국이 아닌 국내외 기업들과 손을 잡은 배터리 소재사 중 이미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선 곳도 있다. 전반적인 전기차 수요 위축 등 ‘공급 과잉’ 우려 때문이다. 배터리와 전기차 기업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을 포기하더라도 미국 내 현지 생산을 중단하고 중국 기업을 파트너로 유지해 유럽 등 다른 시장을 공략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고려아연은 3분기 배터리 소재인 동박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내년 상반기로 미뤘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기업의 품질 인증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동박 공급 과잉으로 제품 가격이 내려가자 고려아연이 사업 진출을 늦춘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배터리 후방 산업인 폐배터리 진출 계획은 아예 보류했다. 작년 말 미국 전자 폐기물업체 이그니오를 인수한 고려아연은 연내 현지에 폐배터리 공장을 착공할 계획이었지만 일단 중단했다.

엘앤에프도 양극재 공장 증설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신사업으로 채택한 전구체,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음극재 공장은 투자 규모도 줄일 계획이다. 에코프로비엠 역시 지난달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4분기는 양극재 물량 정체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 시설투자 비용을 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배터리 셀 업체도 전기차 성장 둔화에 생산 속도를 늦추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포드, 튀르키예 코치그룹이 올해 말 착공을 목표로 준비하던 튀르키예 배터리 합작공장 프로젝트는 지난달 무산됐다. 3사는 올해 2월 업무협약을 맺고 이 공장에서 2026년부터 연 25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와 관련, “회사는 기존 생산시설에서 동일한 상용 전기차 모델에 적용될 배터리셀을 공급할 예정이며 포드와는 앞으로도 오랜 사업 관계를 확장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포드는 SK온과 미국 켄터키주에 짓기로 한 2공장 가동도 당초 목표한 2026년보다 미루기로 했다. 포드가 미국 내 인건비 상승, 전기차 수요 둔화, 전기차 부문 적자 누적 등을 이유로 기존에 계획한 전기차 투자 가운데 120억달러를 줄이겠다고 발표한 여파다.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LG에너지솔루션도 폭스바겐의 전기차 생산 계획 축소에 맞춰 폴란드 공장 가동률을 조정할 방침이다.

포드는 중국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전기차 배터리 핵심 광물 조달에 나서고 있다. 포드는 화유코발트, 브라질 광산업체 발레와 인도네시아에서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료인 니켈·코발트를 공급받기 위한 합작 투자 계약을 맺었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합작사 지분의 73%는 화유코발트가 보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포드가 당장 보조금을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중국이 장악한 공급망을 활용해 저렴하게 전기차를 생산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포드는 ‘가성비’ 배터리로 불리는 LFP 배터리를 현지 생산하기 위해 중국 CATL과도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강미선 기자 misunn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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