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빅5 병원의 내년도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결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인 ‘외산소’(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에서 대거 정원 미달 사태가 이어진 것은 가속화하는 필수의료 붕괴 현상의 단면이다. 빅5 병원 중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세브란스병원의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는 각각 10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가 0명이었다. 빅5가 이 정도면 지방 병원은 말할 것도 없다. 전공의가 모자라면 해당 과의 전문의가 부족해진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심화할 것이란 의미다.
전체 전공의 모집 인원은 3500명 정도다. 그런데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연간 3058명으로 묶여 있다. 이러니 비급여 항목이 많아 돈을 많이 버는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으로 지원이 몰리면 당연히 비인기과에선 정원 미달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대로 가면 인구 고령화와 겹쳐 2035년에 부족한 의사가 2만7000여 명에 이를 전망(보건사회연구원)이다. 매년 2000명씩 늘려가도 부족할 판이다. 의대 정원을 ‘찔끔’이 아니라 대폭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정교한 필수의료 수가 개선과 의료사고 면책 확대 방안이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총파업 카드’까지 꺼내든 대한의사협회의 행태는 개탄스럽다. 의협은 오는 11∼17일 전 회원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의견을 묻고, 17일에는 투표와 별개로 의대 정원 증원을 저지하기 위한 총궐기 대회를 열 예정이다. 환자를 볼모로 ‘의사 밥그릇’을 챙기려는 극단적 직역 이기주의가 아닐 수 없다. 소아과 오픈런이 의사 수 부족 때문이라는 정부 진단에 “젊은 엄마들이 브런치를 즐기려고 오픈시간에 몰려든다”(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는 일부 의사의 인식은 어이없다. 이 같은 의료계 행보는 헌법에 명시한 국민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협하는 행위다.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국민 80% 이상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고 있다. 정부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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