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이 아니다. 우선 역사적 의미가 상당하다.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은 정부가 구축한 온라인 플랫폼, 저장창고 등 산지 인프라를 통해 농가와 식품·유통기업이 직거래할 수 있게 한 게 핵심이다. 짧게는 38년, 길게는 47년 전 시작된 공영도매시장 체제의 해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작지 않다.
활짝 열린 전인미답의 길
신선식품 공영도매시장은 전국에서 33곳이 운영 중이다. 1976년 제정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1985년 서울 가락시장이 건립되면서 농산물 유통 격변이 시작됐다.공영도매시장 설립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공정·투명한 거래 질서 확립이었다. 위탁상에 의해 자행되던 ‘깜깜이 유통’을 투명화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정보 독점으로 도매시장 이해 관계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에 직면한 게 사실이다.
초고령화 등으로 인한 지역 궤멸로 가락시장 청과부류(채소+과일)의 거래 물량은 지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도 가락시장 5대 도매시장법인(서울·중앙·동화·한국·대아청과)의 영업이익률은 대부분 20%대(2022년)에 달했다.
물론 대형마트, e커머스의 급성장으로 농가·유통사 간 직거래가 활성화해 유통시장에서 도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자연스레 축소(농촌경제연구원 추산 2003년 77.3%→2021년 43.7%)되긴 했다.
그렇더라도 유통사 눈높이를 맞출 역량이 안 되는 농민들은 여전히 도매시장을 이용하는 게 실상이다. 이젠 이들마저 유통·식품 기업들과 직거래할 길이 열렸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온라인에 또 다른 가락시장을 만들었다”고 한 건 그야말로 적확하다.
물가 문제, 유통혁신으로 풀자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식품사 압박과 재정 동원에 의존하던 정부의 천수답 물가 정책이 유통구조 혁신 같은 ‘시스템 전환’으로 나아갈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근시안적 팔 비틀기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라고 그렇게 외쳤지만, 결과는 ‘빵 서기관’ ‘우유 사무관’이었다. 역대 어느 정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지만 고구마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은 끝내 남았다. 하지만 ‘온라인 가락시장’은 다르다. 유통 시스템 개혁 결과 10~11월 시범 운영 기간에 이뤄진 거래 111건에서 평균 3.4%의 실질적 소매가 인하 효과가 나타났다.기왕 ‘사이다 정책’이 나온 김에 제안 하나 해보자. 빵 서기관, 우유 사무관을 ‘군기 반장’이 아니라 기업들 민원 해결사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제품 가격 인상 여부만 서슬 퍼렇게 감시하는 데 그치지 말고 기업들이 직면한 수입, 검역, 유통 등의 난맥상을 한발 앞서 풀어주자는 얘기다.
이는 자유주의 정부의 책무이기도 할뿐더러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의미도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쌓이면 제2, 제3의 유통혁신도 머지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