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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논란의 횡재세 상생용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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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의 취약한 부분 중 하나가 막대한 가계 빚입니다. 가계부채는 지난 3분기 말 기준 1875조 원으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04%를 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죠. 국민 모두가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해도 다 갚을 수 없는 규모인데요, 이는 고금리 상황에서 각 가정에 엄청난 고통을 줍니다. 이자 갚느라 허덕이는 가정이 많은 것이죠.

그런데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올 들어 지난 3분기까지 총 31조 원의 이자 수익을 올렸습니다. 사상 최대 기록입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은행이 고금리로 횡재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횡재세’를 매기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언뜻 보면 맞는 주장 같지만, 과연 횡재세 징수가 정당한 걸까요?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말 은행들이 횡재를 한 건지, 만약 그랬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겁니다. 막연히 은행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번 게 아니라고 주장하며 로빈후드 행세를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횡재세 부과는 초과이익 정의의 어려움, 평등 과세 원칙 훼손, 소급입법 문제, 기업 경쟁력 약화와 투자 위축, 소비자에 대한 세금 전가 가능성 등 여러 문제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횡재세가 고통 분담을 통한 ‘상생’을 가져올 수 있을지 4·5면에서 역사의 교훈과 예상 가능한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횡재세 부과가 '무리수' 였다는 결론
20세기 경제사 속에 여러번 나옵니다

횡재세는 영어로 ‘windfall tax’라고 합니다. 바람에 떨어진 과실과 같은 횡재에 세금을 매긴다고 해서 붙은 말입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횡재 이익(windfall profits)에 대해 “과도하거나(excessive), 노력 없이 얻었거나(unearned), 부당한(unfair) 이익”이라고 정의합니다. 횡재세의 시초는 미국 초과이윤세(excess profits tax)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군수물자를 포함한 제품 특수를 누린 기업들에게 부과했죠. 왜 횡재세가 만들어졌는지 역사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미국서 세부담 전가, 중소기업 타격

1917년 US스틸, 듀퐁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의 이익은 1000% 넘게 급등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런 기업의 이익 중 초과이윤이라 판단한 부분에 20~60%의 누진세율로 세금을 매겼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전쟁 특수 기업 이익의 90%를 횡재세로 떼어갑니다. 영국이나 캐나다도 전쟁 이전의 평균이익을 정상이익으로 보고, 이를 초과하는 이익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했죠.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특수가 사라진 뒤에도 횡재세가 유지되면서 기업들이 막대한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를 버티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하는 등 타격이 컸습니다.

한동안 사라진 횡재세는 2차 오일쇼크가 발발한 1980년 미국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런데 당시 초과이익은 석유 회사와 같은 독과점 기업들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상황에서 누린 것이어서 기존의 횡재 이익과는 성격이 조금 달랐습니다. 미국 정부는 물가도 잡을 겸, 석유 회사가 공급하는 기름값에 소비세를 매깁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석유 소비자가격만 올리고, 세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맙니다.

횡재세의 더 큰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1980년 석유 회사에 대한 횡재세 부과는 이 세제가 폐지된 1988년까지 미국 내 원유 생산을 연간 1.2~8.0% 줄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에너지 분야는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고위험고수익)’ 산업입니다. 그런데 어렵게 얻은 높은 수익을 정부가 횡재 이익이라며 몽땅 가져가버리니 이익율이 떨어지고 투자 의욕이 꺾여버린 겁니다. 그 대신 같은 기간 미국의 외국산 원유 의존도는 연간 3~13%씩 증가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세금 부과로 비싸진 자국산 석유를 외면하고 수입산 석유를 많이 구매한 것이죠.

은행엔 횡재세 주저하는 유럽

주로 석유 기업에 부과하던 미국의 횡재세는 미국 경제에 나쁜 영향만 남겼습니다. 이런 역사적 교훈 때문에 작년 미국에서 횡재세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지만 현재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못합니다.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조세재단(Tax Foundation)은 정상이익과 초과이익을 구분할 일관된 방법이 없기 때문에 횡재세는 조세제도를 왜곡시키고 조세 시스템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미국과 달리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에너지 기업에 대한 횡재세를 작년부터 일제히 도입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작년 9월 유럽연합(EU)은 ‘연대기여금(solidarity contribution)’이라며 전력·석유·가스 기업의 초과이윤에 횡재세를 매기기로 했습니다. 영국도 자국 또는 영국 대륙붕에서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에너지 이익 과세법’을 작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벌써부터 영국 BP와 셸, 프랑스 토탈에너지스 등 유럽의 석유 기업들이 신규 유전 개발과 인수합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980년대 횡재세에 발목이 묶여 제대로 투자 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쇠락한 미국 석유 기업의 사례가 유럽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에너지 기업뿐 아니라 금융회사에도 횡재세를 걷고 있지만, 영국·프랑스·독일이 이에 동참하지 않는 건 이런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NIE 포인트
1. 횡재세의 도입 배경과 근거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2. 횡재세가 한시적으로 적용되고 폐지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3. 대표적인 횡재세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토론해보자.
"과도한 세금은 소득불평등 심화시켜"
노벨상 수상자가 지적한 증세의 역설

요즘 길거리에 “고금리 초과수익을 서민에게”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많이 보입니다. 서민 주머니 터는 은행으로부터 횡재세를 거둬 상생하는 데 쓰자는 일부 정당의 주장입니다. 횡재세 도입이 공정해 보인다는 평가가 많지만, 경제 원리를 무시하며 우리의 미래가 달린 ‘거위 배를 가르는’ 소탐대실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횡재세, 평등원칙·이중과세 논란

횡재세는 국가 조세제도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 헌법은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제59조)라며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제는 곧 세법이기 때문에 법의 일반원칙에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권은 작년엔 정유 회사, 올해는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회사를 콕 찍어 세금을 걷으려 합니다. 금융회사의 초과수익을 재원으로 취약계층 등 금융소비자의 금리 부담을 줄여주자고 주장합니다. 헌법재판소는 특정 업종이나 사업자를 다르게 취급해 적용할 만한 입법 목적이 필요하고, 그 방식이 과도하지 않다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원칙적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 기업의 영업이익에 대해서만 징벌적 세금을 거두려 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맞지 않으며,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는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 부과한 적이 없는 새로운 세제를 도입할 때는 과세 목적에 맞는 조세 형태인지, 과세 요건은 적절한지 등을 입법 단계부터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합니다.

횡재세 부과를 둘러싼 이중과세 논란도 있습니다. 기업은 이익을 보면 법인소득세를 낸 뒤, 남은 이익을 기초로 주주들에게 배당을 합니다. 주주들은 이때 배당소득세도 내야 합니다. 여기에 법인세는 4단계 누진세율로 설계돼 있어요. 경영을 잘하는 기업은 이미 3중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데, 추가로 횡재세를 또 내야 하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인 겁니다.

민주당 법안은 과거 이익에 대한 소급과세 논란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초과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기업은 재무·생산구조, 자회사 관계 등을 조정하며 자본이익률이 과도하지 않도록 조세회피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기여금이 의미 있게 걷히지 않고, 투자 위축과 경제 활력 쇠퇴라는 역효과만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세법 체계를 망가뜨리는 편의적 증세는 가능한 한 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이익 가운데 어디까지가 정상이익이고, 어디부터가 초과이익인지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법안에선 “지난 5년간 평균 순이자이익 대비 120%를 초과하는”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어떠한 경제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증세 통한 복지 확대의 역설 잘 봐야

횡재세가 소득재분배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조세정책은 크게 국가 사업 재원 마련, 경기 조절, 자원과 소득재분배를 목표로 세웁니다. 그런데 세금을 거두는 조세정책 설계를 어떻게 하든 소득재분배 효과가 재정지출에 비해 크지 않다는 게 경제학계의 정설입니다. 은행 횡재세가 취약계층과 자영업자 등의 금리 부담을 일부 낮춰줄 수 있겠지만, 의미 있는 경제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전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장기적으로 증세가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요지의 논문(‘소득분배와 세대 간 이동성에 관한 균형이론’)을 1979년 정치경제학 저널에 싣기도 했습니다. 세금을 늘리면 세후 투자수익률이 떨어지고, 이는 인적자본 개발에 대한 투자 유인을 줄이게 됩니다. 개인은 대학·대학원 진학, 각종 자격증 공부 등에 투자를 덜하고 기업도 교육·훈련 투자를 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층 사다리를 올라가기 어려워집니다. 이는 소득불평등을 거꾸로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베커 교수의 모형은 일반 가계도 부담하는 일반적 세금을 다룬 것이지만, 횡재세 외에도 각종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마련을 주장하는 야당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NIE 포인트
1. 횡재세가 법원칙과 조세원칙에 맞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2. 횡재세가 도입되면 기술 혁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자.

3. 불평등 완화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논리의 문제점을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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