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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족 비보이·발달장애 무용수…"무대선 똑같은 배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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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찬 비보이가 춤을 춘다. 한쪽 다리로 서서 균형을 잡을 땐 불안정해 보이다가도 의족을 뺀 채 절단된 다리를 드러내고 무대 이곳저곳을 헤엄치듯 유영할 땐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진다. 그의 등에 새겨진 문구 한마디가 눈에 띈다. ‘살아있어 소중하다.’

국내 최초 장애예술극장으로 지난달 서울 충정로에 개관한 모두예술극장의 제작 공연 ‘제자리’는 장애를 가진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가 함께 등장한다. 프랑스 극단 라 콤마의 연출가 미셸 슈와이저(사진)가 참여한 한·프랑스 공동 창작 작품이다. 슈와이저는 전문 연기자나 공연인이 아닌 일반인과 협업해 공연을 만들어 주목받는 안무가이자 연출가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운영하는 이 극장은 장애인 배우가 직접 참여하는 극을 만들기 위해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

슈와이저는 “‘제자리’라는 제목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로의 자리를 존중한다는 의미”라며 “장애와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만남과 각자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품을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오디션을 거쳐 배우 9명을 뽑았다. 장애를 가진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가 섞여 있다. 나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 연극 경험의 유무도 모두 다양하다. 10년 전 사고로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한 프리랜서 비보이 김완혁(33)은 사고를 계기로 고교 시절 포기한 비보잉을 다시 시작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사진작가 이민희(40)는 무대 위에 카메라를 들고나와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 젊은 시절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정신장애로 꿈을 포기한 류원선(54), 시각장애인으로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의 부단장으로 활동 중인 이승규(43), 발달장애를 가진 무용수 이정민(26)도 출연한다.

대본은 배우들이 연출가와 여러 차례 워크숍을 거쳐 직접 작성했다. 공연은 빛, 나의 원자들, 칼날, 우주의 춤, 처음, 우주와 의지, 공기 등 7개 장면으로 이뤄졌다. 배우들은 음악과 사진, 춤, 독백 등으로 각자 자기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중간중간 나훈아의 ‘사랑’과 구슬픈 아쟁 연주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기도 한다.

이번 공연은 배우들이 자신이 가진 장애를 애써 강조하지도, 숨기지도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관객들은 ‘빛’에 대해 이야기하는 승규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한다. 원선도 자신의 장애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취향과 살아온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래서 배우들이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 혹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들은 처음부터 온전히 공감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대사도 마치 시 구절처럼 상당히 추상적이다. 의족을 찬 비보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네가 나를 볼 때 너는 바로 나의 의지를 봐야 해. 내 몸의 선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게 그거야.”

슈와이저는 “처음부터 배우들의 장애를 알리면 관객들이 대사의 뜻이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관객들이 가지는 선입견을 깨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공연은 25일까지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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