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촌극을 빚고 있다. 갖은 막말로 공세를 퍼부었다가 한 장관으로부터 치부만 까발려지는 의원들이 속출하면서 '자꾸 한동훈 벌집을 건드렸다가 쏘인다'는 분위기다. 한 장관의 체급만 키워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 내부에서는 한 장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무관심'이 오히려 득이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동훈 비판 몇시간 만에…전력 다 까발려진 서영교
지난 22일 서영교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 처남의 마약 의혹과 관련해 한 장관을 여섯 차례 언급하면서 "누구 마약은 잡고 누구 마약은 다 봐주는 것이었냐" 등 불공정하다는 취지로 맹비판했다.
하지만 불과 몇시간 만에 전 국민은 서 최고위원의 전력(前歷)을 샅샅이 알게 됐다. 한 장관이 같은 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깨끗한 척하면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면서 서 최고위원의 치부를 일일이 언급하면서다.
한 장관은 서 최고위원을 겨냥해 ①"보좌진은 친인척으로 채운 분 아닌가" ②"보좌진 월급에서 후원금 떼간 분 아닌가" ③"자기 지인 자녀의 형사 사건에 압력을 국회 파견 판사 불러서 전달했던 분 아닌가"라고 저격했다.
한 장관이 언급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2013년 5개월 동안 서 의원이 대학 휴학 중이던 친딸을 인턴 비서로 채용했던 것과 2015년 친동생을 5급 비서관으로 채용했던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서 최고위원이 앞선 사건에 대해 "딸의 급여를 정치 후원금으로 모두 반납했다"고 해명하면서 드러났다. 보좌진 인건비를 자신의 정치 후원금으로 썼다는 얘기가 된다.
마지막은 서 최고위원이 2015년 5월 국회 파견 판사였던 김 모 부장판사를 의원실로 불러 형사재판(강제추행미수 혐의)을 받고 있던 지인의 아들 이 모 씨를 선처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의혹을 언급한 것이다. 이 내용은 2019년 1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이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송영길 "갑질 장관" vs 한동훈 "NHK(유흥주점) 다닐 때…"
지난 21일에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CBS 라디오에 나와 한 장관을 향해 "사법고시 합격 하나 했다는 이유로 검사 갑질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장관은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송 전 대표 같은 일부 운동권 정치인들이 겉으로 깨끗한 척하면서 NHK 다니고 재벌 뒷돈을 받을 때, 어떤 정권에서는 재벌과 사회적 강자에 대한 수사를 엄정하게 했었다는 말씀을 드리겠다"면서 이른바 '새천년NHK 사건'을 소환했다.
한 장관이 언급한 새천년NHK 사건은 송 전 대표가 200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 전날 '86그룹' 정치인들과 함께 광주광역시 새천년NHK라는 상호의 유흥주점을 찾은 사건을 말한다. 당시 우상호 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이들은 술을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수의 여성 종업원까지 대동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한동훈 무기 '과거 소환'…안민석 "비열하고 쪼잔해"
서 최고위원이나 송 전 대표 모두 한 장관의 이같은 '반격'에는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한 장관의 '과거 소환'은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하는 무기로도 불린다.
지난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한 장관에게 "국민들이 우습냐", "국민이 두렵지 않냐", "그동안 한 발언이나 태도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냐"고 쏘아붙였다.
이에 한 장관은 안 의원의 치부를 들췄다. 그는 "의원님은 민원인에게 욕설을 한 분이 아니냐. 그런 지역구에 욕설 문자를 보낸 분이지 않으냐"며 "그런 분이 여기 와서 누구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제가 안 의원에게 그런 식의 훈계를 들을 생각은 없다"고 받아쳤다.
한 장관은 안 의원이 2020년 9월 7일 지역 민간사업자에게 문자로 욕설을 보냈던 것을 소환한 것이다. 안 의원은 당시 사업자에게 사업 내용을 문자로 물었는데 답장이 없자 "XX이가 답이 없네"라고 욕설이 담긴 문자를 보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안 의원은 당시 민원인이 욕설 문자에 항의하자 "후배에게 보낸 것이 잘못 갔군요. 양해 바랍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안 의원은 한 장관과의 대정부 질문 사흘 뒤 CBS 라디오에 나와 "(한 장관이) 반격할 공격용 무기를 나름대로 제조해서 오는 것"이라며 "저런 태도는 굉장히 좀 비열하고 쪼잔하다고 느끼고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거라고 본다"고 하소연했다.
본전도 못 찾는 민주당…"자꾸 벌집 건드렸다가 쏘여"
이처럼 민주당 인사들이 한 장관을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찾는 양태가 반복되면서 오히려 한 장관의 정치적 체급을 키워주고 있다는 평가가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훈비어천가'를 부르며 한 장관을 띄워주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한 장관은 "국민의힘이 저를 띄운다는 것에 대해 공감할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민주당이 저를 띄운다는 점에는 많은 분이 공감할 것 같다"고 일침을 놨다.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자꾸 한동훈이라는 벌집을 건드렸다가 쏘여 퉁퉁 붓는데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 괜찮아지면 쏘인 걸 까먹고 또 건드리고 있다"며 "한 장관과 설전을 벌여서 본전이라도 찾은 분들이 있긴 하냐"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는 이제야 '무관심이 답'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 라디오에서 "장관의 언행을 보면 애정 결핍이 있는지, 끝없이 관심을 갈구하는 스타일인데 세상이 본인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 속에 있는 것 같다"며 한 장관한테는 악플보다 '무플'이 훨씬 더 무섭지 않을까. 오히려 무관심이 답"이라고 말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