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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방울 '크리스털 여우'의 日작가, 뾰족뾰족 '검은 성게'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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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강국 일본엔 세계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 3인방’이 있다. 구사마 야요이(94), 나라 요시토모(64), 무라카미 다카시(61). 뉴욕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꼭 갖고야 말겠다’는 이들이 줄을 선다. 그리고 지금 서울에선 ‘차세대 슈퍼스타’ 자리를 노리는 일본 현대미술계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12월에 찾아가 보면 좋을 ‘일본 작가들의 전시’ 세 편을 꼽아봤다.
(1) 용산 페이스갤러리, 나와 코헤이展
2018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정문 유리 피라미드 천장에 황금색 왕관이 하나 걸렸다. 제목은 ‘Throne’. 이집트 고대 왕관 모양으로 왕좌라는 뜻을 그대로 상징했다. 주인공은 일본 조각가 나와 코헤이(48). 세계 곳곳을 돌며 화제를 뿌리고 있는 나와가 초대형 신작을 들고 21일 서울을 찾았다.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코스믹 센서빌리티’를 위해서다.

이번 전시 작품은 조각과 회화, 설치 시리즈 등 40점. 갤러리 3개 층에서 각각 다른 시리즈를 조명하고 있다. 나와는 모든 것이 정보화되는 시대의 인간과 자연을 주목해 온 작가다. 국내에선 ‘크리스털로 뒤덮인 사슴’ 조각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는 ‘픽셀 시리즈’ ‘리듬과 스파크 시리즈’ ‘바이오매트릭스’ 등이 나왔다. 모두 다른 작품 같지만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생명조차 정보로 인식되는 시대에 인간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2층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는 ‘픽셀 시리즈’가 자리 잡았다. 사슴 닭 라디오 TV 등 사물과 동물에 원형 크리스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조각 위에서 세포가 증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슬을 거쳐야만 조각 내부의 진짜 형체를 볼 수 있듯, 요즘 우리가 ‘렌즈’라는 디지털 물체를 거쳐야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것은 라디오 카세트 조각 ‘붐 박스’. 그가 어린 시절 쓰던 제품을 일본 중고 사이트를 뒤져 구매해 만들었다. 그가 쓰던 앤티크 의자에 닭 한 마리가 앉아있는 ‘반탐-체어’는 구슬 밑에 실제 박제된 닭들이 들어 있다. 처음으로 작가 개인의 추억이 작품에 담겼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3층이다. 대형 조각 ‘스파크’는 서울에서 처음 공개됐다. 까만 조각 위에 수없이 많은 뾰족한 가시가 솟아 있는데, ‘우주에서 부유하는 조각’이 모티프가 됐다. 초대형 성게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표면에 벨벳을 사용했다. 까만 조각들이 주변의 빛과 소리를 잡아먹는 듯한 느낌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나와는 “컴퓨터로 조각을 하나하나 설계한 뒤 손으로 모든 가시를 직접 끼워맞추는 작업 방식을 택했다”며 “컴퓨터라는 ‘기술’이 만든 것도 결국 인간이 재창조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가장 아래층에선 깜깜한 실내에서 홀로 빛나는 직사각형을 볼 수 있다. ‘바이오매트릭스’ 시리즈다. 움직이는 설치 작업으로 수많은 기포가 표면으로 올라왔다가 사라지고, 곧바로 다시 올라오는 과정을 반복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상승과 하강을 통해 나와는 태어나서, 자라고, 다시 땅으로 사라지는 생명의 섭리를 나타냈다. 기포는 실리콘 오일을 사용했는데, 증발하지 않기 때문에 몇백 년이 흘러도 이 작품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전시관 옆 카페에 걸린 두 점의 드로잉 작품도 놓치지 말길. 그의 작업실이 있는 교토에서 아이들과 가족이 사는 도쿄까지 신칸센을 타고 왕복하며 그린 작품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텅 빈 객실과 선로의 모습을 흑백의 선들로 나타냈다. 나와라는 스타 작가의 쓸쓸한 일상을 그림 너머로 훔쳐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6일까지.
나무인간이 보여준 '같은 세계, 다른 시선'
(2) 마곡 스페이스K, 유이치 히라코展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유이치 히라코(41)의 대형 회화 작품은 세계 미술 시장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최근 들어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한국에서 작품을 직접 보기는 더 어려워졌다. 유이치의 오랜 팬들이 서울 마곡 스페이스K에서 열리는 개인전 ‘여행’을 반기는 이유다.

유이치의 트레이드마크는 일명 ‘트리맨’으로 불리는 캐릭터다. 인간의 몸에 나무 머리, 사슴뿔처럼 생긴 나뭇가지가 달려 있는 친근한 모습이다. 일본 민속 설화의 나무 정령을 참고해 만들어 일본적인 느낌도 물씬 풍긴다. 화풍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동화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유이치는 나라 요시토모와 무라카미 다카시 등 ‘일본 팝아트’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꼽힌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어릴 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등 작품을 수백 번 봤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30여 점.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대형 작품이 여럿 나와 있다. 네 개의 각기 다른 작품을 이어 붙인 듯한 가로 10m, 높이 3m의 회화 ‘The Journey(Traveling Plants)’(2023)를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그 나무가 떨어뜨린 씨앗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자연의 순환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를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작가는 이를 거부한다.

“환경 파괴는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무턱대고 환경을 보호해야만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저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자연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본다면 만족합니다.”

작가가 직접 만든 전시장 입구에 있는 핀볼 기계가 눈에 띈다. 입장권과 함께 지급되는 코인을 넣고 기계를 작동시키면 트리맨 모양의 작은 기념품이 1~2개 나온다. 작가는 “미술을 좀 더 많이 접하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2월 4일까지.
생각만으로 창작하는 시대, 몸의 의미는
(3) 종로 가나아트센터, 日여성작가 7인展

‘신체성이 소멸되는 시대.’ 일본 대표 미술관 중 하나인 모리미술관의 큐레이터 스바키 레이코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이렇게 진단한다. 그럴 만하다. 기술 발달로 서로 직접 마주하지 않고도 일은 물론 연애까지 하는 시대가 됐으니까.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예술가는 아이디어만 내고 작품은 스튜디오 직원들이 만드는 ‘개념미술’은 이미 흔해졌고,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려 제작하는 작품도 늘고 있다.

스바키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기획한 전시 주제를 ‘신체성’으로 정한 건 그래서다. 전시 제목은 ‘바디, 러브, 젠더’. 국내 대표 갤러리 가나아트와 공동 기획한 전시다. 전시 개막식에서 만난 그는 “인간의 신체성이 사라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체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있는 100점의 작품은 일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작가 7명이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말 그대로 ‘신체성’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네온사인 화가’ 요코야마 나미가 대표적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받은 ‘LOVE’ 손글씨를 네온사인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걸 다시 자신의 손으로 그려낸다.

사람의 신체를 과일에 빗댄 작품도 있다. 모리 유코의 ‘디컴포지션(Decomposition)’. 과일에 전극을 꽂고 그 안에 있는 수분을 신호기, 앰프, 스피커를 통해 소리로 전환했다. 소리는 과일의 수분이 빠지면서 바뀐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신체의 수분 비율이 점점 낮아지는 것에서 착안해 청각화했다.

어렸을 적 병을 앓았던 쇼지 아사미는 삶과 죽음을 한 작품에 담아냈다. 그림 속에서 손이 뻗어나가는 장면은 그가 물감과 천을 사용해 팔을 쭉 뻗어 그린 것이다. 자신의 움직임을 그림 속 흔적으로 남겼다. ‘풍경에 녹아내린 인물’을 그리는 가시키 도모코 등 색다른 아이디어의 결과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2월 10일까지.

최지희/성수영/이선아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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