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 22일 오후 3시 51분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회사 명의를 도용해 사익을 추구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수익 구조가 불투명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허점을 파고들어 온갖 수법으로 부정한 이익을 착복한 사례가 줄줄이 포착되고 있다. 부동산 PF 담당자의 집단 비리 가능성이 고개를 들면서 금융회사에 초비상이 걸렸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 KB자산운용 부동산금융본부 이사 R씨와 전 미래에셋증권 투자개발본부 이사 L씨가 사기 및 사문서 위조·행사 혐의 등으로 서울 광진경찰서와 중랑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2021년 인천 구월동 주상복합 개발 프로젝트에서 공모해 토지계약금 37억원을 대출해준 개인 6~7명에게 허위 투자인수확약서(LOC)를 제시했다가 고소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주단뿐 아니라 미래에셋증권도 이들을 고발했다. L씨는 얼마 전 2800억원대 해외 대체투자 대출계약서를 위조했다가 고발된 인물이다.
부동산 PF의 첫 단추인 토지계약금 대출은 리스크가 가장 큰 투자다. 인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추후 잔금 지급을 위한 브리지론이 성공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다 잃는다. 대신 수익률도 연 100% 안팎에 이른다. 연 20%로 묶는 이자제한법을 피해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이자를 지급한다. LOC 위조 사기를 벌이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의 LOC는 그 자체가 돈이다. 투자자를 속여 돈을 쉽게 모을 수 있고, 이자를 덜 줘도 된다. 위조 LOC로 절감되는 돈이 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구조다. 사업장 지분까지 받아 대박을 낼 수도 있다.
이번 인천 구월동 주상복합 사례 외에도 위조 LOC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양증권 부동산 PF 담당자는 2021년 말 강원 양양 생활형 숙박시설 개발 사업에서 PF 대출이 깨질 것을 우려해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선순위 한도 대출을 약속해 문제가 됐다.
금융회사들은 뒤늦게 부동산 PF 담당자의 일탈 행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로 부동산 개발 사업에 돈을 대주는 조건으로 임직원 개인적으로 수수료를 챙기거나 사업장 지분을 받아 착복하는 식이다. 증권사가 저금리를 등에 업고 경쟁적으로 부동산 PF 대출을 늘리던 2020년대에 많았던 방식이다. 한 시행사 대표는 “대형 증권사 전무가 대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차명 지분 50%, 우리 증권사 명의 지분 20%를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이투자증권 내부 감사에서 발각된 것도 임직원이 차명으로 후순위 대출에 나선 사례다. 업계에선 이들이 연 10%대 수익을 먹기 위해 차명 투자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 시행사와 모종의 ‘검은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케이리츠투자운용 임원들은 부동산 매각을 약속하고 뒷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자칫 금융당국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비리를 인지하고도 담당자만 조용히 내보내고 사건을 덮는 일이 많았다. 차명 투자가 발각된 대형 증권사의 부동산 PF 임원들은 조용히 퇴사한 뒤 운용사를 차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에 대한 전방위 검사로 부동산 PF 비리를 캐고 있다. 비정상적인 수수료와 사업장 차명 지분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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