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바이낸스가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창업자인 자오창펑 최고경영자(CEO)는 사퇴했다. 북한 등 미국 정부 제재 대상과의 거래를 중개하고 돈세탁을 도왔다는 혐의를 인정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재무부와 법무부는 바이낸스가 은행보안법(BS)과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43억달러(약 5조5000억원) 상당의 벌금을 내기로 미 정부와 합의했다고 2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바이낸스는 하마스의 무장조직인 알 카삼 여단,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 등 테러단체 및 범죄자의 의심 거래를 금융당국에 보고하거나 방지하지 못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 이란 북한 시리아 등 미국의 제재 대상국에 있는 사용자와의 거래를 중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바이낸스는 벌금 폭탄뿐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했다. 2017년 설립된 바이낸스는 비교적 늦게 암호화폐거래소를 출범시켰지만 수년 만에 세계 최대 거래소로 성장했다.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량은 650억달러(약 84조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바이낸스 매출을 200억달러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 바이낸스 사용자는 1억2800만 명에 이른다.
미국 정부의 바이낸스 옥죄기를 두고 ‘중국 견제’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CEO에서 물러난 자오창펑은 중국계 캐나다인이다. 그는 바이낸스를 설립하기 직전 중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오케이코인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냈다. 바이낸스는 중국 정부가 가상자산 사업을 전면 금지한 2017년 중국에서 철수했지만, 바이낸스의 서버 및 데이터가 중국과 관계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자오창펑은 이를 의식해 “바이낸스는 본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미국 정부와의 소송 과정에서 자오창펑의 주소는 몰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선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앞두고 미 정부가 사전 정리에 나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바이낸스가 5조원이 넘는 벌금을 감당할 여력은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개인적으로도 벌금 5000만달러를 내야 하는 자오창펑의 현재 재산은 230억달러로 알려졌다.
바이낸스는 미국 시장 철수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초기 수익 대부분을 미국 시장에 의존했다. 2018년에는 바이낸스 웹 트래픽의 30%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여기에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 상당량의 비트코인이 바이낸스에서 미국 내 거래소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자오창펑은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한다. 새 CEO에는 리처드 텅 바이낸스 지역시장 총괄이 지명됐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