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대곡역은 고양 일산신도시와 화정지구 중간 지역이다. 이곳에는 서울지하철 3호선·경의중앙선·서해선이 지난다. 내년 말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노선까지 개통하면 4개 노선이 통과하는 ‘수도권 서북부 교통 허브’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그러나 19일 찾은 대곡역 일대는 상가는 고사하고 건물 하나 없이 비닐하우스만 드문드문 보이는 휑뎅그렁한 들판이었다. 고양 능곡동에 산다는 한 주민은 “도로마저 군데군데 끊겨 있고,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차가 지나다니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 일대 개발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10년이다. 이후 13년째 한 걸음도 진척을 보지 못했다. 당시 복합환승센터 개발사업 시행을 맡은 고양시와 국가철도공단,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서로 간 입장을 좁히지 못해 사업이 좌초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교통 인프라를 다 갖추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자리냐 주택이냐’ 고양 vs LH 이견
대곡역세권 개발사업은 2016년 3월 공동사업 시행자로 경기주택도시공사(GH)와 국가철도공단, 고양도시개발공사(고양시)가 선정되며 본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고양시는 당초 사업비 1조9000억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덕양구 대장동 일대 180만㎡에 첨단지식산업과 주거·상업·물류·유통시설을 조성하는 계획을 야심차게 세웠다.하지만 201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하면서 사업이 좌절됐다. LH가 국가철도공단의 대타로 나섰다. 사업비를 LH가 60%, 고양도시개발공사가 30%, GH가 10%로 분담하기로 했지만 2021년 LH 임직원 투기 의혹 사태가 터지면서 사업은 다시 표류했다. 당시 국토교통부가 신규 출연·출자 사업을 금지하면서 LH는 대곡역세권 개발사업에서 발을 뺐다. 고양시 관계자는 “LH에 사업 참여를 요청했지만 아직 답은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대곡역 개발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신규 택지에서도 제외됐다. 고양시가 ‘베드타운’ 이미지를 벗기 위해 주택 대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 유치를 더 원하고 있어서다. 고양시 관계자는 “주택은 최대한 줄이고 산업 기반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곡역세권 공공주택 개발사업 추진 검토에 참여했던 LH 관계자는 “2021년 LH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개발 방향성에 대해 고양시와 견해차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1차 역세권인 3~4분 거리에는 일자리 기능을 넣고, 2차 역세권인 250~500m 거리에는 주상복합 등을 중심으로 개발하면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만큼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타·그린벨트 해제 등 ‘산 넘어 산’
대곡역세권 개발이 이뤄지려면 산 넘어 산이다. 고양도시개발공사는 연말까지 대곡역세권 기본 구상과 사업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내부 사정으로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공택지 개발이 아니면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야 한다. 사업지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부지 규모가 30만㎡ 이상이어서 국토부의 허가가 필요하다.업계 관계자는 “그린벨트를 해제하려면 경기도나 국토부와 협의가 필요해 산하기관인 GH·LH와 사업을 진행하는 게 유리하다”면서도 “LH가 최근 부실 공사 여파 등으로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구역은 농업진흥지역과 농업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막혀있다.
개발이 지체된 몇 년 새 땅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LH 사태가 터진 2021년 3월 92.4였던 덕양구 대장동의 지가지수는 지난 9월 100.3으로 올랐다. 사업 지연으로 토지 보상 비용만 더 늘어났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지 않은 인근 취락지구(제1종일반주거지역)는 도로 위에 지정된 한 번지가 32개로 쪼개질 정도로 투기도 심각한 상태다.
박진우/정희원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