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챗GPT가 출시된 이후 올 한 해 인공지능(AI)이 집중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투자 측면에서도 작년 한 해 51억달러가 AI 관련 기업에 투자됐으나 올 들어 벌써 215억달러를 넘어섰다. 챗GPT의 등장은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논의를 가열시키고 있다. AI 발전이 단순한 자동화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넘어 우리의 일상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더불어 AI가 빅브러더가 돼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일상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주장 역시 제기되고 있다.
AI는 기술 진보가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대다수 사람의 복리와 후생을 두텁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화두를 던지고 있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두 교수의 최근 저서 <권력과 진보>는 인류 역사상 기술 진보가 도리어 많은 사람의 삶을 어렵게 했음을 상술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급속한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초기 농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던 근로자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공장 노동자가 됐으나 이들은 극도로 열악한 근로 및 생활 환경과 저임금으로 고통받아야만 했다. 이뿐만 아니라 시장 확대를 위한 유럽 강국들의 식민지 확장 경쟁이 벌어지면서 식민지 주민들 역시 왜곡된 경제 구조하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가야 했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두 저자는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진보가 근로자를 포함한 다수에게 그 혜택이 확산한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연히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은 아동노동 금지, 산업재해보험, 기초연금 등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개선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지속적인 기술 진보는 노동을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면서 생산성 향상에 따라 임금 상승과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21세기 들어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기술(IT)과 AI의 기술 진보는 과연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다수의 복리와 후생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결과만 보면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미국의 지난 100년간의 경제 성장과 생산성 변화를 집대성한 저서에서 197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생산성은 그전 기간에 비해 현저히 저하됐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페이팔 창립자 피터 티엘은 트위터로 대표되는 SNS에 대해 자조적으로 “우리가 원한 것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였지만 대신 얻은 것은 140글자뿐이다”고 했듯이 IT의 진보는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도리어 IT와 AI가 근로자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는 사례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 서비스업종 대기업이 흔히 사용하는 ‘0시간 계약(zero-hours contracts)’은 근로자들에게 언제, 몇 시간을 일할지에 대한 아무런 보장이 없는 근로계약이다. 이 계약하에서 근로자들은 줄어든 수입마저 일정하지 않고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개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IT를 활용한 최적화 프로그램을 통해 비용 절감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이런 계약을 도입하고 있다. 이 계약하에서의 기업 성과를 연구한 결과들은 직원들의 잦은 이직과 근로 의욕 저하로 실제로 기업의 수익에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결과적으로 IT 발전에 기반한 0시간 계약이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잠재성장률 저하를 극복해야 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기술 발전과 그 활용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과거의 사례와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볼 때 기술 발전이 곧 경제 성장과 복리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기술 발전을 통한 잠재성장률 향상과 복리 증진을 위해서는 정책당국, 기업, 근로자 간 심도 있는 논의와 협의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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