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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너희가 극우를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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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1994년작 장편소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는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다. “열시에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탁자에 놓았다”, 처제가 “168㎝에 35-24-34 46㎏”이라고 했다가 “174㎝에 34-25-35 50㎏”으로 뒤바뀌는 것 등등이다. 소설에 ‘재즈적 성격’을 부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기법이다.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런 것들이 다 가능한 게 예술이고, 문학이다. 말이 안 될수록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문인이 정치비평을 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모든 문인이 정치비평을 할 필요는 없지만, 하겠다고 결정한 문인에게는 ‘선택적 의무’다. 내 경우가 그러한데, 정치적으로 양분돼 서로를 철천지원수 대하듯 하는 한국 사회에서의 내 이 선택은 아무리 근거와 논리로 글을 써도 다양한 손해를 입고 린치를 당한다. 하지만 내가 작가인 것은 작가로서 할 일을 하기 위해서지, 인생에서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치는 총과 칼이 아닌 언어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약속인데, 언어의 기본개념들이 무너지면 정치비평은 불가능하다. 폭력은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가 아니라, 어불성설(語不成說)로 공격할 때 발생하고 물질적으로까지 확장된다. 그중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제대로 설명돼야 할 단어가 바로 ‘극우(極右)’다.

대학시절 축제에서의 일이다. 술 취한 독일인 교수님이 탈춤판 안으로 들어가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당시에는 공장 노동자들이 단체로 대학축제에 놀러와 행사도 가지고 그랬다. 그중 한 젊은 남자가 독일인 교수님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요지는 이랬다. “이렇게 착한 미국놈이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나는 그 노동자에게 몹시 화를 냈다. 내 요지는 이랬다. “미국놈이 아니다. 미국인이 아니고 독일인이다. 그리고 넌 미친놈이다!” 그는 투덜거리면서 제 무리 속으로 되돌아갔다. 다행히도(?) 한국말을 모르는 독일인 교수님은 계속 모닥불 주변을 돌면서 탈춤 흉내를 내고 있었다.

나는 참담했고, 그건 분노라기보다는 서글픔이었다. 이게 시대와 이념에 관한 고통이라면, 세월이 많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그 고통 속에 서 있다. 오늘도 나는 그 청년 같은 사람들과 자주 부딪힌다. 그들이 무서운 것은, 자신들이 그렇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는 데 있다. 그들은 천진하다. 안 착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고, 그래서 나는 그들이 끔찍하다.

단식 같지 않은 단식 중인 야당 대표 앞에 가서 큰절을 올리는 한 여자를 보면서 나는 그날 밤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또 자신의 권력형 성상납에 대한 수사를 받은 전직 여당 대표였던 젊은이는 ‘자기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대한민국 명문가 후손이자 5·18민주화운동 공로자인 ‘미국계 한국인’ 의사를 향해 일부러 영어를 쓰면서 이방인 취급, 모욕했다. 그때도 나는 그 밤을 생각했다.

좌파와 우파에 ‘극(極)’자를 붙이는 기본 요건은 ‘폭력’과 ‘인종차별’이다. 작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팔랑거리는 사람들은 그 두 가지 죄와는 관련이 없다. 폴리스라인을 잘 지키고, 대한민국헌법에서 ‘자유’ 자를 지우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북한 인권을 얘기한다. 반면 극좌(極左)는 남한에 분명히 있다. 폭력을 사용하고 거기 간부가 간첩으로 체포되고 있는 세력들이 그렇다. 북한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파시즘 집단이다. 그걸 따르거나 용인하면 극좌가 맞다.

극좌들이 멀쩡한 사람을 극우라고 모함하는 엉망진창 속에 나는 살고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 마오쩌둥 등은 서로의 복제인간들이다. 극좌나 극우나 결과는 똑같다. 나치즘은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로서 좌익과 우익의 혼종이고, 파시즘은 이념이 아니라 질병이어서 인간의 사상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흘레붙는다. 게다가 21세기 디지털 파시즘은 문화에서 양악수술을 하고 나타나 대중을 지배한다.

북한 인민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묻는다. 너희가 좌파 맞나? 너희는 ‘결정적 자기모순’에 빠져 스스로를 ‘극우’로 만들고 있다. 어불성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예술이지 정치현실이 아니다. 나는 극좌와 싸우듯이 극우와도 싸울 것이다. 내가 자유주의자이기 전에 작가이고 작가이기 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북한 강제수용소를 외면하는 자들에게 다시 묻는다. 너희가 극좌를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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