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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11월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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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온종일 <은지와 소연>의 교정을 봤다. <은지와 소연>은 11월 말에 출간이 예정된 은지와 소연의 우정 시집이다. 서로의 시를 마음껏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이렇게 시집까지 내다니, 종이에 가지런히 얹힌 시들을 받아 든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는 교정도 같이 봤다. “내 거 한 편 니 거 한 편 읽고 또 내 거 한 편 니 거 한 편 읽는 방식으로 교정 보자. 어때?” “좋아!”

둘이 하는 낭독회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은지가 쓴 시를 읽어 주는데 ‘니’라는 첫 시에서부터 웃음이 났다. 좀 전까지도 ‘네’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는데, 그에 대한 변명처럼 ‘니’라는 시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둘 다 경상도에서 태어났고, ‘니가’는 ‘네가’로 써야 한다는 걸 학교에서 배운 적 있다. 시 속의 구절처럼 살면서 한 번도 ‘네가’를 발음해 낸 적 없지만, 세상엔 발음해 낸 적 없는 ‘네’가 존재한다.

우리의 우정도 그렇게 존재하는 거라면 좋겠다. 확정지을 순 없지만, 확신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인디언 달력에 의하면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한다. 11월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는 믿음. 나는 그 말을 힘껏 믿고 싶게 만드는 문장 앞에서 오래도록 우정에 대해 생각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이 아무리 외로운 심사가 된다고 해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을 기억하며 11월을 보내고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 늦게라도 도착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가로수가 잘리고 있었다. 가만 보니, 올해 자란 새 몸만 잘린다. 나무들이 헌 몸을 버리고 새 몸으로 사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나무들도 동면 채비를 하는 11월이라 두꺼운 살갗을 가진 것들이 동면에 들기 좋은 걸까? 헌 가지의 그림자가 두껍다. 그래도 이렇게 추운 날, 가지를 잃어도 되는 건지 걱정이 됐다. 가지치기 방법을 찾아봤다. 무리한 가지치기로 활력을 잃은 나무는 회복을 위해, 절단된 자리에서 새로 나온 가지를 주 가지만 남기고 제거한다고 한다. 그러면 오늘 본 나무들이 잘 회복해 내년 봄엔 싱싱한 연둣빛 잎을 밀어 올리는 상상을 해도 될까?

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에서 함께 걷는 친구의 입김이 보인다. 친구는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목도리에 장갑까지 끼었는데도 춥다고 했다. 나도 머리가 쭈뼛쭈뼛 섰다. 기온이 점점 내려가도 나무는 가릴 것이 없어 모든 것이 환해지지만, 사람은 얼굴 빼고 모든 것을 가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따뜻하고 싶어서 따뜻한 안쪽이 되려는 것 같다. 그런데 바깥이 없으면 어떻게 안쪽이 될까. 우리의 심장을 감싼 바깥이 너무나 소중해지는 겨울이다.

친구들과 올해 8월에 문을 연 작업실 미아 해변에서는 11월 11일부터 만화가 정원의 책상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프닝 파티 때 읽은 김현 시인의 글 때문에 거기 모인 모두가 울었다.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크림이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는 정원 작가는 김현 시인의 편지에서 정말 크림이가 나올 때마다 울었다.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그 자리를 눈물로라도 채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져 나도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우는 동안 난로 위에서는 귤 6개가 구워지고 있었다. 귤을 구우면 당도가 높아진다는데, 서로의 바깥이 되려고 모인 사람들이 귤처럼 따뜻해지고 있었다. 크림이라고 이름 붙인 선인장 화분이 책상 아래 엎드려 있고, 안경에 김이 서린 채로 울고 웃느라 자꾸만 길어지는 11월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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