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의 부실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깡통 어음'을 국내에 유통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국내 증권사들이 최근 무죄를 확정받았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화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법인, 각 회사 소속 직원 A씨와 B씨 2명의 상고심에서 최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검찰이 공소사실로 적은 범죄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로 판단한 원심에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한화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은 투자금 상환이 어렵다는 정보를 숨긴 채 중국 공기업인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자회사인 CERCG캐피털의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국내 증권사에 판매한 혐의로 2019년 기소됐다. 두 회사는 CERCG캐피털이 발행한 채권을 담보로 1600억원어치 ABCP를 발행해 국내 증권사들에 팔았다. 이 ABCP는 CERCG가 지급보증했다.
하지만 CERCG의 지급보증을 받아 발행된 CERCG의 다른 자회사들이 만기에 채권을 갚지 못하면서 CERCG캐피털 채권의 교차 부도(크로스디폴트) 사유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선 지급보증을 한 CERCG가 대신 원리금을 갚아야했지만 중국 외환국(SAFE)이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두 증권사 찍은 ABCP도 만기일에 상환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 ABCP에 투자한 국내 증권사들은 고스란히 손실을 봤다.
검찰은 두 증권사가 투자상품 정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채 ABCP를 유통했다고 판단해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A씨와 B씨를 재판에 넘겼다. 양벌 규정에 따라 한화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법인도 기소했다.
그러나 법정에선 검찰 측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전문투자자들이 CERCG가 지급보증한 자회사 채권을 대신 갚는 것을 SAFE가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SAFE와 관련한 문의가 있으면 자신들이 아는대로 설명해준 것으로도 보인다”도 밝혔다. 그러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들이 모든 SAFE 관련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숨긴 채 거래 상대방들에게 아무 고지를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A씨와 B씨는 이번 재판에선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CERCG캐피털 채권 인수과정에서 선취수수료를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에 대해선 2020년 유죄가 확정됐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