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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광고사진은 '예술'이 된다…보이는 것 너머를 찍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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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슈트를 차려입은 호랑이가 광화문 한복판을 걷는다. 호랑이에게 들려 있는 튤립 한 다발과 우주인 인형. 한복 입은 소녀들에게 다가가자 이내 놀라 도망간다. 경복궁으로 발길을 돌린 호랑이는 텅 빈 궁 안을 배회하다가 소녀들을 다시 만나 손을 잡고 뛰어논다. 전래동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만 어딘가 낯설고 미스터리한 상황. 이 사진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광고 사진의 대가 김용호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2022) 연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호랑이의 해’를 맞아 용맹한 ‘아저씨 호랑이’가 서울을 배회하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흑백 연작 사진을 찍었다.

그는 멈춰진 순간을 담지만 40년 넘게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는 사진작가다. 패션과 명품 브랜드는 물론 우리가 소비하는 수많은 것의 이미지를 창조해온 광고 사진으로 유명한 그에겐 상업 갤러리에서 전시 요청이 쇄도한다. 현대자동차, 현대카드, LG전자 등과 함께 광고 목적으로 찍은 사진이 곧 판매로도 이어지는 유일한 사진가다. 상업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란 얘기다.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창작”이라고 말하는 그답게 유명인들의 얼굴도 김용호의 손에선 새로 태어난다.
사진작가·설치미술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지난해 그가 작업한 ‘수트 입은 호랑이 아저씨’는 최근 20여 분짜리 단편영화 ‘데 베르미스 서울리스(De Vermis Seoulis)’로 확장됐다. 프랑스 작가 스테판 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 ‘서울도시전설’ 네 편의 작품 중 하나로 제작돼 지난달 31일 서울 압구정동 CGV에서 첫선을 보였다. ‘인공지능(AI) 페이스 스와프’ 기술을 가진 버추얼 휴먼 전문기업 펄스나인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동 제작한 이 영화는 내년 국제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용호는 ‘데 베르미스 서울리스’에 호랑이 가면을 쓴 남자를 다시 등장시켰다. 4585장의 사진으로 ‘스틸 무비(사진 영화)’를 만들고, 여기에 AI 이미지 기술을 결합했다. 서울의 오래된 풍경들이 몽환적인 장면과 결합해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강 위에 섬처럼 떠 있는, 이제 곧 무너지기 직전인 아파트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호랑이와 토끼 가면, 무속인 등이 교차돼 등장한다.

그는 우리시대 명인들을 흑백 사진으로 기록한 ‘명인’ 전부터 현대차 공장의 기계 장치와 그 흔적을 추상 판화처럼 기록한 ‘Brilliant Masterpiece’ 전, 사람이 스스로 잘 볼 수 없는 ‘등’에 오롯이 집중해 찍은 ‘몸’ 사진전(대림미술관 개인전), 물속에 누운 채 연잎의 풍경을 찍은 ‘피안’ 전 등 잇달아 예술사진전을 열어왔다. 다수의 작품이 현대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예술 사진으로 인정받으며 지난해 <포토랭귀지-크리에이티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으로도 만들어졌다.

“광고 사진가로 살며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습니다. 아름다워야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고, 행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철학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 없이 만들어낸 사진은 촌스럽죠. 철학이 있어야 울림이 있고, 울림이 없는 사진은 작품이라기보단 단순한 이미지에 불과하니까요.”
상업사진을 예술로…도전과 창조의 역사
그의 작품 세계는 그가 평생 사진가로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왔는지를 보여준다. 현대차 제조 공장을 찍은 사진, LG전자 창원공장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들도 그런 예다. 그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사물(또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메시지가 없는 사진으로는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김용호는 “대상에 얼마나 집중하느냐의 문제, 기술은 기본이고 얼마나 성실하게 대하느냐 태도의 문제”라고 했다.

“산업기계와 생산품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노동과 열정, 지역사회와 자연이 함께 움직인 것”이란 작가의 말처럼, 그는 혁신의 너머에 있는 숭고한 가치들을 재조명한다. 차갑기만 한 쇳덩어리도, 붉은 쇳물도 때론 추상화처럼, 때론 생생한 정물화처럼 그려지곤 한다.

사물과 세상을 탐구해온 김용호의 눈은 인물을 다룰 때 더 빛을 발한다. 이어령 선생과 백남준 작가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시간이 특히 그랬다. ‘백남준 휠체어 레벨 아이’(2005)는 미국 뉴욕 소호에서 차이나타운까지 매일 휠체어로 왕복하던 백남준의 눈높이로 세상을 기록했다. 정명훈, 박정자, 이매방, 황병기, 박서보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인들도 그의 렌즈 앞에 섰다.
비현실적인 모든 것은 현실 속에 존재한다
사진가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온 그는 스토리텔링 사진 장르를 개척한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단 한 장으로 남은 이미지 속에도 그 고민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겼을 때, 보그의 잡지 모델들은 로봇들과 함께 다시 옛날 풍경 속으로 스며들었다. 카드사의 광고 사진 속 카드 한 장은 동시대의 우리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모든 것이 뒤엉킨 상태로 놓인다. 스쳐가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그의 작업은 ‘잠시 멈추어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의 원천은 호기심과 관찰, 그리고 모험이다. 하나의 주제로 작업할 때 그는 책을 탐독한다. (백남준 작가를 만나기 전엔 그의 전기를 모두 읽기도 했다.) 수중 촬영을 하고 싶어 한국인 최초로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라이선스를 받아 세계를 떠돌기도 했다. 탐구하고 경험하지 않으면 철학을 가질 수 없고, 철학이 없다면 창작도 불가능하다는 신념이 바탕이 됐다.

“창조적인 일이라면 장르 구분 없이 도전했어요. 단순한 기록자로 남을 것인가, 이미지 언어로 말하는 창작자로 남을 것인가. 마치 톨스토이처럼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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