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전기자동차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휘발유 모델 등 중고 내연기관차 가격 하락폭의 두 배 수준으로 시세가 하락하는 모습이다. 충전 시 불편함과 비싼 가격 등으로 전기차 신차 수요가 줄어들자 그 영향이 중고차 시장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중고 전기차 시세가 당분간 약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고 전기차 당분간 약세”
중고차 플랫폼 기업 케이카가 7일 발표한 11월 중고차 시세에 따르면 중고 전기차 가격은 전달 대비 최대 8.4% 하락했다. 평균 하락률은 2.0%로 휘발유(-1.2%), 경유(-0.8%), 하이브리드(-0.8%) 모델의 두 배에 달했다. 이민구 케이카 수석애널리스트는 “중고차는 일반적으로 매달 평균 1% 안팎 감가가 이뤄지는데 중고 전기차는 평균 감가율의 두 배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이달 시세 하락폭이 가장 큰 모델은 볼보 C40 리차지(-8.4%)다. 지난달 5350만원 수준에서 거래됐지만 이달엔 4900만원으로 하락했다. 르노 조에(-8.1%), 푸조 e-DS3 크로스백(-5.5%) 등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현대차 아이오닉 6는 3840만원으로 전달보다 4.9% 하락했다. 벤츠 EQE V295와 BMW i4도 각각 4.7% 떨어지는 등 국산, 수입 가리지 않고 일제히 하락했다.
중고 전기차 시세는 하반기 들어 갈수록 하락폭이 커지는 모습이다. 평균 하락률은 7월 0.2%에서 9월 1.7%, 이달 2.0%로 확대됐다. 이 수석애널리스트는 “고유가 상황에서도 중고 전기차 시세는 당분간 약세를 보일 전망”이라고 말했다.
신차 너무 비싸 소비자 외면
국내에서 중고차 수요는 통상 신차 수요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전기차 신차 수요가 줄어들자 중고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전기차 신차 등록 대수는 1만5445대로 전년 동월 대비 20.3% 감소했다. 휘발유와 하이브리드 차량이 각각 3.4%, 65.2% 늘어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업계에선 비싼 가격에다 충전 인프라 부족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기차는 차값의 절반에 달하는 배터리 비용 탓에 최소 5000만원부터 시작한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부사장)은 지난달 콘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시장이 얼리어답터에서 일반 소비자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충전 인프라와 가격 부담이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판매가 저조하자 제조사가 가격을 낮추고 정부가 보조금을 늘린 것이 중고 전기차 시세를 더 끌어내렸다. 중고차 시세 산정 때 기준점이 되는 신차 가격이 내려가면서 중고차 가격 역시 하락한 것이다. 현대차는 연말까지 아이오닉 5, 6를 400만원 할인 판매하고 있다. 회사가 차량 가격을 깎는 만큼 정부가 구매 보조금을 더 주기로 하면서 아이오닉 5, 6의 보조금은 80만원 늘어났다. 총 480만원 더 싸진 것이다.
완성차업계는 쪼그라드는 전기차 수요를 되살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가격을 낮출 계획이다. 로이터는 이날 테슬라가 독일에서 3000만원대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기아도 내년부터 최저 3000만원대 전기차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단기적으로 허들을 만났지만 주요 국가의 환경 규제 강화와 친환경 인프라 투자 증가 등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