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이 국내 리그 LCK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T1은 5일 부산 동래구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중국 리그 LPL 3번 시드 리닝 게이밍(LNG)을 세트스코어 3 대 0으로 완파했다.
자칫 LCK 팀 전원 탈락으로 ‘부산 도서관’이 될 뻔했던 사직실내체육관이 콘서트장처럼 들썩였다. T1의 완벽한 승리에 부산 경기장은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젠지 e스포츠와 KT 롤스터가 연달아 LPL에게 패한 상황에서 나온 단물 같은 승리에 팬들은 더욱 열광했다. T1은 롤드컵 4강 ‘LPL 내전’을 막음과 동시에 2018년 한국에서 열린 롤드컵 4강에 한국 팀이 오르지 못했던 치욕도 씻어냈다.
T1의 경기력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1세트 26분, 2세트 31분, 3세트 26분. 3경기를 모두 끝내는데 1시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T1은 대형 오브젝트인 용을 세 경기 합쳐 12마리를 독식했다. LNG는 이날 용을 단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했다.
T1은 밴픽부터 인게임 경기력까지 완벽한 모습을 선보였다. 스위스 스테이지부터 이어진 메타에 대한 완벽한 재해석을 선보였다. 우선 T1은 1세트 아트록스-렐-오리아나, 2세트 아트록스-렐-사일러스를 택하며 상체에선 현재 메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챔피언을 고르며 안정감을 갖췄다. 하지만 바텀 라인에서 닐라-세나, 바루스-애쉬라는 서머 시즌부터 현재까지 거의 쓰이지 않는 챔피언으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3세트에는 상체에서 변화를 줬다. 이번 롤드컵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던 제이스, 뽀삐를 택했다. 특히 레드 사이드 마지막 카드로 등장한 제이스로 ‘제우스’ 최우제가 맹활약하며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T1 밴픽의 핵심은 본인들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T1은 지난 2023 LCK 스프링부터 현재 롤드컵까지 이어진 고밸류 메타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다. 대신 자신들이 지난 2022 LCK 스프링 전승 우승을 달성할 때 활용했던 강한 라인전에 기반을 둔 ‘스노우볼 조합’을 꺼내 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단순히 스노우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라인전을 기반으로 상대를 몰아세우고 자신들이 강한 타이밍에만 싸움을 유도했다.
대표적인 경기 양상이 2세트에 나왔다. 경기 시간 21분까지 골드 격차가 1000밖에 나지 않으며 스노우볼이 완벽히 굴러가지 않았다. 후반으로 접어들 경우 LNG가 택한 한타 조합의 강함이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T1은 착실히 용 스택을 쌓으며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후 내셔 남작(바론)을 먼저 시도하지 않고 시야를 잡으려 나오는 상대의 진입을 막으며 바텀 라인을 미는 등 이득을 극대화했다. 결국 장로 드래곤이 등장하며 조급해진 LNG가 먼저 진출했고 빈틈을 노린 T1이 완벽히 LNG 선수들을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오늘 승리를 거둔 T1은 오는 11월 12일에 부산 동래구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4강 경기에서 LPL 1번 시드 징동 게이밍(JDG)과 맞대결을 펼친다. 반대편 브래킷의 빌리빌리 게이밍(BLG)과 웨이보 게이밍(WBG)이 상대적 약 팀으로 분류돼 ‘사실상 결승전’으로 평가받는다. T1이 이길 경우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롤드컵 결승에 오른다. JDG는 롤드컵을 우승할 경우 올 한 해 열리는 모든 라이엇 주관 대회에서 우승컵을 차지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