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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20세기 최악의 분쟁지, 중동 아닌 동유럽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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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으로 중동이 다시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이런 별명에 걸맞은 지역은 동유럽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곳이자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코소보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동유럽사>는 동유럽에서 민족주의가 부상하는 과정을 다룬다. 18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동유럽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존 코넬리 미국 버클리대 유럽사 교수가 썼다. 중동처럼 동유럽도 분쟁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 대륙의 끝자락이 아니라 통로에 있다. 다양한 문화, 언어, 종교를 가진 민족이 섞여 살았다. 국경이 자주 바뀌었다.

저자는 동유럽에서 민족주의가 힘을 얻은 때를 1780년대로 본다. 동유럽 일대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요제프 2세가 독일어를 제국의 공용어로 선언하면서다. 통일된 정체성을 가진 국가로 만들려는 의도였다. 이는 역효과를 냈다. 지역 간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치를 허용하던 제국의 전통과 달랐기 때문이다. 자기 언어와 문화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 헝가리인 체코인 등 여러 민족이 반발했다. 민족주의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2등 국민’이란 열등감과 자기 민족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과격한 민족주의로 흐른다.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그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를 암살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1차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한 인물이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이다. 그의 부모는 시골의 소작농이었다. 힘든 삶을 살았다.

프린치프는 자기가 황태자에게 쏜 총알을 정당화했다. 불공정과 압제를 없애기 위한 행동이라고 믿었다. 사정은 그보다 복잡했다. 암살당한 황태자는 포용주의를 내세웠다. 남슬라브만의 국가를 세우려 했던 프린치프 같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겐 악재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우리만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동유럽 민족주의자들의 소원은 이뤄졌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 자결의 원칙’을 내세운 덕에 수많은 민족이 독립을 이뤘다. 체코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가 이렇게 세워졌다. 하지만 신생 국가 안에도 여러 민족이 섞여 있었다. 갈등이 싹틀 수밖에 없었다.

민족주의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이민자 국가’ 미국도 외부인 배타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쉬운 책은 아니다. 1400여 쪽에 이른다. 수많은 이름과 디테일 속에 길을 잃기 쉽다. 대신 그 속에 타산지석이 될 이야기가 담겼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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