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가져갈 건가요?”
문화계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무인도에 뭔 책을?” 이런 답은 탈락. 저 질문은 ‘당신에게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는 책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거니까요.
소설가 김영하는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고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라고 답했습니다. 올해 탄생 195주년을 맞은 19세기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역작이고, 총 3권, 1800쪽에 달하는 ‘벽돌책’입니다. 김 작가는 이 책을 무인도에 챙겨가려는 이유를 설명하며 “언제 구조될지 모르니 오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죠.
그저 길기만 하고 지루해서는 세계 명작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겠죠. 무엇보다 이 소설은 재밌습니다. 매혹적이라고 할까요. 작품의 줄거리는 ‘불륜’으로 요약됩니다. 그것도 남매가 둘 다 바람을 피워요.
사건의 시작은 오빠의 불륜입니다. 스테판 아르카디치 오블론스키 공작이 바람을 피운 탓에 부부가 냉전을 거듭하자 스테판의 여동생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카레니나가 오빠 부부를 화해시키려고 모스크바에 옵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고위 관료의 아내, 여덟 살짜리 아들의 어머니로 행복하게 살아가던 안나는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마주친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 백작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스테판의 처제 키티 셰르바츠카야에게 구애하던 브론스키도 안나에게 빠져들고요. 둘의 애정은 숨겨지지 않아서 사교계에 퍼져나가고, 둘은 외국으로 도망치듯 떠납니다.
과연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독자는 안나의 삶을 따라 읽으며 사랑과 자유, 가정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작품은 가정생활을 조각배를 타는 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균형을 잡고 앉아 있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노를 저어야 한다는 걸 한시도 잊으면 안 됐다. 바라보기는 쉽지만 그걸 하기란, 무척 즐겁기는 해도 고역이었다.”
수려한 문장들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작품 초반부, 안나는 브론스키에 빠져드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 서둘러 기차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기차에 브론스키가 타고 있었어요. 왜 여기 있느냐는 안나의 물음에 그는 말합니다. “아실 텐데요. 당신이 있는 곳에 있고 싶어서 가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이 책의 첫 문장은 안 읽은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책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만 추려도 최소 7명. 다양한 인물이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당대 러시아 사회상, 문화 등이 녹아듭니다. 철학과 종교, 농민 문제 등에 대한 톨스토이의 고민도 살펴볼 수 있고요.
이 작품은 톨스토이가 스스로 꼽은 ‘진정한 첫 장편소설’입니다. 그는 친구이자 평론가인 니콜라이 스트라호프에게 보낸 1873년 편지에서 훗날 <안나 카레니나>가 될 작품에 대해 이렇게 적었어요. “이 소설은 진정한 장편소설이야, 내 생애 처음 쓰는….”
이때 톨스토이는 작가로 활동한 지 20년이 넘은 상태였죠. 2000페이지가 넘는 <전쟁과 평화>도 이미 집필을 마쳤고요. 이 작품이 그에게 얼마나 특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완성하는 건 또 다른 실화죠. 말년에 톨스토이는 자신이 쓴 작품의 저작권을 모두 포기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아내의 반대에 극심한 갈등을 겪습니다. 대문호에게도 가정생활의 노를 젓는 건 역시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