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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부터 로댕까지…파리의 전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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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이 살아숨쉬는 낭만과 영광의 시대, 벨 에포크(belle poque).

역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프랑스 파리를 이렇게 기억한다. 에펠탑과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등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이때 태어났고, 모네 르누아르 고갱 피카소 등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은 일제히 파리로 모여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대에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의 ‘벨 에포크’라 이름 붙였다. 당시 파리의 위상은 1886년 파리에 도착한 고흐가 친구에게 적은 편지에서도 알 수 있다.

“파리는 역시 파리야(Paris is Paris). 파리는 유일한 곳이지.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곳만 오면 공기가 내 머리를 맑게 해.”

150여 년 전의 벨 에포크가 요즘 미술계에서 화두다. 파리가 다시 세계 예술의 중심에 서면서다. 세계 컬렉터, 갤러리스트, 아트 딜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지금, 파리의 벨 에포크가 다시 찾아왔다”고.

그 중심엔 지난해 파리에 상륙한 세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이 있다. ‘파리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이달 중순 두 번째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하지만 단순히 아트페어 하나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이곳에선 수백 년 역사를 지닌 미술관, 시대의 명작을 수집해온 재벌들의 컬렉션,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들이 갖고 있는 공간이 ‘한 몸’으로 움직인다.

고흐의 마지막 70일(오르세), 근대 조각 거장 로댕과 현대 조각가 곰리의 만남(로댕미술관), 모딜리아니와 그를 세상에 알린 아트딜러(오랑주리)….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거장들을 새롭게 보는 전시들이 이달 들어 파리에서 한꺼번에 개막했다.

또 하나의 축은 문화예술의 오랜 후원자이자 동반자 역할을 해온 럭셔리 브랜드들이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은 자신이 수집해온 대형 마크 로스코 작품을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 꺼내놨다. 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회장은 일본 대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돔형 미술관에 미국 작가 마이크 켈리가 만든 슈퍼맨 도시를 전시했다. 이들 전시는 내년 초까지 이어진다.

시대를 초월한 거장들의 숨결을 한자리에서 느끼고 싶다면, 지금 파리로 가는 티켓을 끊어보자. ‘제2의 벨 에포크’를 맞이한 파리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다시 파리의 시대다.
파리 전시 (1) 반 고흐
"난 목숨을 걸었어"…밤낮없이 작품에 몰두한 고흐의 마지막 70일

빈센트 반 고흐. 아무리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그 이름. 고흐를 내걸고 열리는 전시는 전 세계 곳곳에 셀 수 없이 많다. 오죽하면 고흐의 전시가 안 열리는 날은 1년 중 단 하루도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 3일부터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흐 전시는 그 차원이 다르다. 고흐 작품이 적잖이 많은 파리에서조차 ‘이번 전시는 꼭 봐야 한다’며 입소문이 났고, 평일 낮에도 미술관 앞에 긴 줄이 늘어설 만큼 인기다. 대체 어떤 그림이 걸려 있길래…. 유럽 전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전시를 1시간 남짓 기다려 들어가봤다.

1890년 5월 고흐가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나와 7월 밀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의 시간은 딱 70일. 전시는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제목은 ‘오베르와 반 고흐, 그의 마지막 순간’이다. 파리 북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배경으로 고흐의 마지막 순간을 집중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는 이 기간 그가 남긴 그림 74점 중 48점, 드로잉 33점 중 25점을 모았다. 삶을 짓누르는 우울증, 그 속에서도 두 달여간 혼신을 다해 그린 그림. 고흐는 그 기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침엔 야외에서, 오후엔 작업실에서 오직 ‘그림’
처음 관람객을 맞이한 건 고흐의 자화상이다. 묘한 청록색 배경과 살아있는 듯한 형형한 눈빛. 고흐가 오베르로 가기 전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35점의 자화상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하는 건 그 옆에 걸린 ‘가셰의 초상화’(1890)다. 폴 가셰는 우울증 전담 의사였다. 고흐는 오베르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자화상을 가셰에게 갖고 갔다. 그림 옆엔 고흐가 직접 가셰의 반응을 적은 글이 있다. “가셰는 이 초상화에 완전히 열광하더군. 가능하다면, 그리고 내가 원한다면 자신의 초상화도 그려달라고 했어.”

그때부터 가셰는 고흐의 마지막 두 달을 함께하는 동료가 됐다. 고흐는 가셰를 자신의 ‘도플갱어’로 여겼다. 진료가 없는 날에도 수시로 만나 그림에 대해 얘기했다. 입구 옆 작은 전시장에는 에칭 기법으로 완성한 가셰의 또 다른 초상화도 만나볼 수 있다.

가셰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고흐에게 그림에 전념하라고 했다. 고흐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오후엔 작업실에서 그림을 수정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예술가를 만나는 것도 꺼리고, 그림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피했다.

널찍한 전시장에 걸린 오베르의 풍경화들은 그렇게 완성됐다. 강가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 넓게 펼쳐진 들판과 나무…. 고흐는 특유의 거칠지만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오베르의 풍경을 그려냈다.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오베르에 얼마나 매료됐는지를 알 수 있다. “오베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야. 정말 아름다워서 일하지 않는 것보다 일하는 게 훨씬 낫다니까.”
“내 이성의 반은 작품에 머물러 있지”

열정에 불타올랐던 고흐에게 주변 사람들은 영감의 원천이 됐다. 가셰와 그의 딸인 마르그리트, 고흐가 묵은 여관 주인의 딸, 신원불명의 여성들 초상화까지. 그다음 전시장에는 그가 오베르에 머물며 그린 여러 점의 인물화가 걸려 있다. 생동감 있는 색채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까지 캔버스에 그대로 담는 것, 고흐는 그게 ‘현대 초상화’라고 여겼다.

이 시기 고흐는 ‘더블 스퀘어’라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도 13점 남겼다. 두 개의 정사각형을 가로로 합쳐놓은 듯한 긴 풍경화다. 이 중 11점이 이 전시를 위해 모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지 얼마 안 돼 고흐는 그림 속 밀밭에서 자신에게 총을 겨눴다. 그리고 이틀 후, 동생 테오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전시장 벽 한쪽에 적힌 그가 테오에게 미처 보내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서 볼 수 있듯, 그야말로 그림에 살고, 그림에 죽었다. “글쎄, 난 내 작품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어. 내 이성의 반은 작품에 머물러 있지.” 전시는 내년 2월 4일까지 열린다.
파리 전시 (2) 곰리와 로댕
뒤엉켜 벌받는 검은 인간들…이상하고 기묘한 조각 展

근대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는 누구일까. 십중팔구는 오귀스트 로댕을 꼽는다. ‘생각하는 사람’(1880) 등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까지 조각하면서 ‘신이 내린 손’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렇다면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조각가는 누구일까. 아마도 영국 예술가 안토니 곰리를 떠올릴 것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두 조각가가 한자리에서 만났다. 프랑스 파리 로댕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안토니 곰리: 크리티컬 매스’에서다.

우선 티켓을 끊으면 미술관 본관에 들어서기 전 별도 전시장을 거쳐야 한다. 실물 크기의 사람 조각상이 공중에 매달려 있고, 이리저리 서로 뒤엉켜 있다. 벽에 머리를 처박고 있거나 쪼그린 채 고개를 숙여 뒤를 보는 이상한 자세의 조각상도 있다. 곰리의 ‘크리티컬 매스2’ 신작이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조각상들은 마치 익명의 군중처럼 느껴진다. 본관으로 향하는 길에도 곰리의 ‘검은 인간’이 이어진다. 본관 앞 중정에 여러 개의 조각상이 쪼그려 앉아있다가 천천히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곰리가 로댕을 만나러 가는 관람객을 안내하는 듯하다.

본관 안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두 예술가의 만남이 펼쳐진다.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만들어진 로댕의 인물 조각상들이 곰리의 작품을 에워싸고 있는가 하면, 진열장에 두 작품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근육과 핏줄 하나하나까지 살아있는 로댕의 작품, 가장 단순한 요소인 선과 면으로 사람 몸을 조각한 곰리의 작품이 구분 없이 뒤섞여 있는 모습은 볼수록 기묘하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파리 전시 (3) 모딜리아니와 기욤
불운한 천재 곁을 지킨 눈밝은 후원자…둘의 우정 돌아보다

예술가는 고독하다.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고, 남들이 뭐래도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도 그랬다. 가늘고 긴 얼굴과 동공이 없는 텅 빈 눈. 지금은 누구나 그림만 보고 그의 이름을 댈 만큼 유명하지만 그의 삶은 불운 그 자체였다. 돈이 없어 평생 병치레했고 술과 마약에 빠져 살았다. 어찌나 불행한 삶이었던지 동료들은 그를 프랑스어로 ‘저주받았다’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한 “모디”로 불렀다.

그런 모딜리아니에게도 그의 작품을 알아봐 준 ‘눈 밝은’ 후원자가 있었다. 젊은 미술상 폴 기욤(1891~1934)이다. 둘은 모딜리아니가 죽기 6년 전인 1914년 처음 만났다. 모딜리아니의 재능을 알아본 기욤은 몽마르트르에 작업실을 구해주고 백방으로 작품을 홍보했다. 모딜리아니의 회화 100여 점, 드로잉 50여 점, 조각 12점이 모두 기욤의 손을 거쳐 컬렉터에게 팔렸다.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이 모딜리아니와 기욤을 함께 회고하는 특별전을 연 배경이다.

둘의 사이는 예술가와 딜러 그 이상이었다. 전시장 입구에 모딜리아니의 자화상과 그가 그린 기욤의 초상화가 함께 걸린 이유다. 둘의 시너지가 꽃핀 건 1차 세계대전 때였다. 모딜리아니와 기욤은 건강상 이유로 전쟁에 나가는 대신 파리에 남았다. 1900년대 초 역동적인 파리 예술계의 ‘산 증인’이 된 것이다. 둘은 파블로 피카소 등 파리를 휩쓴 화가들과 어울렸다. 전시장엔 모딜리아니가 당시 그린 유명인들의 초상화도 걸렸다. 전시는 내년 1월 15일까지.
파리 전시 (4) 마크 로스코
노란색 안에 숨겨진 수만가지 색…LVMH 회장도 사무실에 걸어뒀다

눈으로 직접 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술 작품도 그중 하나다. 이미지로만 보면 ‘이게 왜 명작일까.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보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곤 한다. 마크 로스코가 바로 그런 작가다. 캔버스에 단색의 페인트를 칠한 게 다인 것 같은데, 그에겐 언제나 ‘현대미술의 거장’ ‘미술사 흐름을 바꾼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세계 최고 부자로 손꼽히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도 집무실에 로스코의 그림을 걸어뒀다.

왜 그렇게 다들 로스코에 열광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지금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서 열리는 ‘마크 로스코 회고전’에 가보시라. 굵직한 예술가들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는 파리에서 단연 인기 있는 전시로 꼽힌다. 이번 전시는 로스코의 67년 인생 ‘축소판’이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등 세계 유수 미술관뿐 아니라 로스코 후손이 물려받은 작품, 개인 컬렉터 소장품 등 곳곳에 흩어져 있는 로스코 작품 110여 점을 한데 모았다.
“내 예술은 추상이 아니다, 단지 살아 숨 쉴 뿐”

관람은 지하 1층에 걸린 풍경화에서 시작한다. 로스코의 눈을 사로잡은 건 뉴욕의 지하철이다. 추상화의 대표 화가인 로스코가 지하철 풍경을 그렸다니, 의아할 수 있지만 지금의 로스코를 만든 건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는 ‘지하철 그림’ 연작을 통해 플랫폼, 천장, 기둥, 난간 등 건축 요소를 탐구했다. 대도시의 풍경을 관찰하며 인간의 고독함을 그리는 법도 익혔다. 당시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것을 즐겼던 로스코가 그의 영향을 받아 그린 자화상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그를 추상화로 이끈 건 전쟁이었다. 1945년 세계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미술계에선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했다. 합리주의와 이성에 대한 반기였다. 그런 흐름 속에서 로스코의 그림도 점점 형태를 잃어갔다. 위층 전시장에서는 비교적 윤곽선이 뚜렷한 초기 추상화부터 점점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후기작을 차례로 볼 수 있다.

로스코의 추상화는 단색으로 칠해져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색깔이 중첩돼 있다. 그에게 노란색은 단순한 노란색이 아니다. 그 안에는 밝은 레몬색, 탁한 오렌지색, 흰색이 이리저리 섞여 있다. 붉은색도 옅은 살구색과 진한 와인색, 검은색이 여러 겹으로 중첩돼 있다. 각도를 바꿀 때마다 새로운 색깔이 보인다. 하지만 로스코가 정작 추구한 건 ‘색’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좇았던 건 ‘빛’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예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내 예술은 추상이 아니다. 단지 살아 숨 쉴 뿐이다.”
전시 후반으로 갈수록 어두운 색깔의 작품 많아져

루이비통재단미술관은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하기 최적의 장소로 꾸며졌다. 일부러 조명을 어둡게 해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하게 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대형 회화는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생각에 빠지게 한다.

1960년대 중반 들어서 로스코는 어둠에 이끌렸다. 전시장 후반으로 갈수록 탁하고 어두운 색깔의 작품이 많아진 이유다. 거기엔 로스코를 괴롭혔던 우울증과 건강이상도 한몫했다. 검은색, 회색이 소용돌이치는 캔버스는 블랙홀처럼 관람객을 압도한다.

전시의 끝이자 하이라이트는 미술관의 가장 위층이다. 이곳엔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로스코의 작품이 함께 전시돼 있다. ‘블랙 앤드 그레이’ 연작을 그릴 때 자코메티에게 영감을 받았던 로스코에 대한 헌정이다. 1970년 로스코는 결국 우울증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의 끝자락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벽면에 적힌 그의 생전 말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내가 화가가 된 이유가 있다. 음악과 시가 지닌 깊고 강렬한 감정의 경지로 미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전시는 내년 2월 4일까지 열린다.
파리 전시 (5) 佛 뷰티브랜드 겔랑
화려함 속 흉측함, 惡과 善의 공존…꽃의 이중성 그리다
프랑스 파리의 ‘쇼핑 메카’ 샹젤리제 거리. 이곳에 있는 럭셔리 뷰티 브랜드 겔랑 매장은 지금 온통 꽃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꽃이 아니다. 청동, 레진,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로 변주한 꽃들이다.

처음 마주한 건 황금색 향수병 사이로 보이는 한 여자. 머리와 얼굴, 몸이 온통 초록색인 여자의 곁을 파리지옥이 감싸고 있다. 1992년생 작가 마르셀라 바르셀로가 그린 ‘비너스 플라이 트랩’(2023)이다.

겔랑은 최근 파리에서 열린 아트페어 ‘아트바젤 파리’ 개최에 발맞춰 세계 각국 26명 예술가에게 ‘꽃’이라는 주제를 던져주고, 그 작품을 받아 매장에 전시했다. 작품마다 제각각의 개성이 넘친다.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가 무섭고 기괴한 존재로 뒤바뀌는 꽃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악의 꽃(The Flowers of Evil)’이다. 19세기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시에서 따온 전시명은 꽃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중국 예술가 얀 페이밍의 그림이 그렇다. 멀리서 보면 파란색 장미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면 섬뜩한 해골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생(生)과 사(死)는 한끗 차이’라는 것. 꽃은 성(性)의 은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작가 로니 란다는 레진으로 꽃잎을 한 장 한 장 빚어 장미를 창조했다. 겹겹의 꽃잎은 여성의 신체 일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우크라이나 예술가 미콜라 톨마쵸프는 밧줄로 꽁꽁 묶인 장미를 그려냈다. 여성에게 금욕을 강요하는 사회적 속박을 신선하게 나타냈다. 전시는 다음달 13일까지다.
파리 전시 (6) 마이크 켈리
고상한척 위선 떠는 서구 꼰대 문화…바나나맨으로 응징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인근엔 면적 1만㎡, 총 5개 층 규모의 거대한 건축물이 있다. 햇살이 투명하게 비치는 유리 돔형 천장으로 ‘미(美)의 정점’을 찍은 이 건물의 이름은 ‘부르스 드 코메르스’. 구찌,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명품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케링그룹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개인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한 미술관이다.

이달 들어 이곳 1층에 별도의 임시 전시장이 생겼다. 그 안에 들어서면 ‘삐삐’ 위태로운 경고음이 울리고, 그 사이에 오묘한 형광빛으로 빛나는 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시다. 미국 작가 마이크 켈리(1954~2012)가 만들어낸 ‘슈퍼맨 도시’다.

고상한 미술관에 아이들이나 보는 만화 주인공이라니. 궁금증을 떠안은 관객들에게 위층 전시장은 켈리의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영혼, 오컬트, 성(性), 저급문화…. 피노는 서구 지성주의가 금기시하는 모든 것을 다룬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그의 퍼포먼스 영상 ‘바나나맨’이 있는 전시장이다. 영상에선 그가 어렸을 적 TV쇼에서 영감을 받은 노란 옷의 ‘바나나맨(사진)’이 등장한다. 그 옆엔 어른이 아이 목소리를 흉내 내는 기괴한 목소리가 전시장에 울려 퍼지고, 키스 소리와 신음 소리가 이어진다.

여기엔 유년 시절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충동, 10대 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들어 있다. 켈리는 이런 식으로 피상적인 ‘팝 컬처’ 속에 심오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숨겨뒀다. 전시는 내년 2월 19일까지.

파리=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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