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무기화'에 나선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에 이어 2차전지 소재 원료인 흑연 수출 통제를 단행하자 기술 혁신을 통한 자구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차세대 실리콘 음극재 개발, 사용후배터리 재활용 기술 연구 등으로 중국산 흑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은 지난 24일 제주도에서 열린 '2023 K배터리 연구개발(R&D) 포럼' 직후 기자들과 만나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에 대해 "오는 11월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중 전략 경쟁 차원에서 중국이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라며 "12월 이후 수출 통제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질지는 정상회의 경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중국은 지난 20일 고순도·고강도·고밀도 인조 흑연 재료와 제품, 천연 흑연 재료와 제품을 정식 수출 통제 품목으로 공고했다. 오는 12월 1일부터 이 품목들은 상무부에 이어 국무원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해 통관 기간이 지연되거나 수출이 안 될 수도 있다. 흑연은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음극재의 원료다. 한국은 지난해 배터리 음극재용 흑연 94%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박 부회장은 "중장기적으로는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음극 혁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흑연 대신 실리콘을 섞은 실리콘 음극재를 예로 들어 "현재는 실리콘을 4% 정도 혼합하고 있는데 그 비중을 늘려나가면서 혁신을 주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일본의 수출 규제 당시에도 한국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프로그램을 가동해 일본 의존도를 낮춘 것처럼 한국 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흑연을 자체적으로 수급할 수 있도록 사용후배터리에서 흑연을 뽑아내는 재활용 기술 연구개발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위원은 "폐배터리나 스크랩에서 흑연도 추출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순도가 낮아 음극재용으로는 활용이 어려운 수준"이라며 "재활용 기술개발을 강화해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