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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중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는 달랐다. 호황을 누리던 명품시장이 흔들리고 있지만 에르메스는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선방했다. 명품 소비를 이끌던 중국의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느린데다 전세계 부유층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명품 시장은 더욱 움츠러들 전망이다.
◆에르메스 전 지역 두자릿수 성장
에르메스는 3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 늘어난 33억 6000만유로(약 4조8000억원)를 기록했다고 24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시장 조사업체 비저블알파가 집계한 시장 추정치인 14% 성장률을 웃돈다. 다만 에르메스의 3분기 매출 증가 폭은 1분기(23%), 2분기(27.5%)보다 줄었다.로이터통신은 "에르메스는 1만달러 짜리 버킨백과 같은 핸드백을 살 여유가 있는 쇼핑객들의 수요를 만족시키면서 격동의 시기를 경쟁자들보다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에르메스는 유럽과 미주에서 각각 20%, 18% 매출이 증가했다. 매출 증가율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10.2%로 가장 낮았지만, 모든 지역이 두자릿 수 성장을 기록했다. 올해 에르메스 진출 40주년인 일본에서는 매출 24% 늘었다.
이는 각 국의 경제 상황뿐 아니라 환율 영향도 있다. 에르메스는 올해 들어 원가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7% 가량 인상했는데, 달러 강세로 미국에서는 가격이 3% 안팎 인상되는 효과를 내는데 그쳤다.
에르메스의 에릭 뒤 할고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업계 일각에서는 판매 둔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 추세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지정학적 긴장이 판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모든 지역에서 로열티가 높은 고객을 기반으로 두고 있어, 다른 고객층보다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작다"고 설명했다.
◆명품 슈퍼사이클 끝나가
에르메스와 달리 구찌와 생로랑, 루이비통, 디올 등 명품 브랜드의 3분기 실적은 부진했다.이날 프랑스 케링그룹은 3분기 매출이 44억6000만 유로로 전년 동기대비 13%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추정치인 -11.4%보다 더 악화한 수치다.
특히 케링그룹의 매출 절반을 차지하는 가장 큰 브랜드인 구찌 매출이 14% 급감했다. 구찌는 올해 초 선임된 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의 첫 번째 컬렉션을 9월 공개했는데,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지는 내년부터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케링그룹에서 매출 비중은 작지만 빠르게 성장해왔던 생로랑과 보테가 베네타의 3분기 매출도 각각 16%, 13% 줄었다.
케링그룹은 매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260년 넘는 역사의 프랑스 럭셔리 향수 브랜드 ‘크리드’를 인수하기로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케링그룹은 9월 구찌의 경영진을 대대적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세계 1위 명품기업인 프랑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도 지난 10일 발표한 3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을 밑돌았다. LVMH는 3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 늘어난 199억6400만유로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 매출 증가율(17%)보다 두드러지게 둔화했다. LVMH의 핵심 브랜드인 루이비통, 크리스찬디올이 포함된 패션&가죽제품 부문의 3분기 매출 증가율은 9%로 시장 예상치(11.2%)를 밑돌았다. 와인 코냑을 비롯한 주류 부문의 3분기 매출은 14% 줄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명품 소비가 더 둔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명품 소비에 지갑을 열던 소비자들의 태도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에 따른 차입비용 증가 등 경기 둔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RBC캐피털마켓의 피랄 다다니아 애널리스트는 "명품 시장의 슈퍼사이클이 끝나가고 있다"며 "현재 명품 시장 규모는 2019년보다 약 24% 높으며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RBC는 2024년 명품 브랜드의 전체 매출이 시장 컨센서스를 3~8% 밑돌 것이라고 추정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