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정부가 운영하는 회계 공시 시스템에 회계장부를 등록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회계 공시 없이는 세금 감면이 불가능해지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정부의 ‘노동조합회계 공시제도’ 참여를 선언한 것이다. 앞서 정부는 노동조합(산하 조직)과 상급단체가 모두 결산을 공시해야 조합비를 기부금으로 분류해 15%를 세액공제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해 이달부터 시행 중이다.
무려 62년이나 유지된 노조 ‘깜깜이 회계’라는 큰 적폐가 깨진 점은 적잖은 변화다. “노조 투명성과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착에 의미 있는 진전”(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하지만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린 당연한 결과라는 점에서 너무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지난 5년간 정부와 광역자치단체 17곳에서 받은 지원금만 1520억원인 두 거대 노조가 ‘노조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특권을 누려온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강성 파업과 노노(勞勞) 간 착취라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노조 회계 공시제도 수용은 막 오른 긴 노동개혁의 출발에 불과하다. 헌법심판을 청구키로 하고 “정부에 숙이고 들어갈 수 없다”며 마지막까지 반발한 데서 보듯 두 노조는 언제라도 반격 모드로 돌변할 것이다.
양대 노조의 후퇴는 “3대 개혁 중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가 올린 귀중한 승점이다. 화물연대의 물류파업에 원칙 대응한 이후 폭력시위가 줄고 있는 것도 반갑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다음 과제는 윤 정부가 칼을 뺐다가 접은, ‘주 69시간 근로’ 프레임에 밀려 교착 상태에 있는 근로시간 유연화와 한국만 글로벌 스탠더드와 따로 놀고 있는 고용 경직성 해소다. 인공지능(AI)과 로봇 중심으로 산업계 흐름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10년, 20년 앞을 내다본 노동개혁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1980년대식 사고에 머물며 떼쓰는 거대 노조의 저항을 뚫으려면 임기 말까지 원칙을 사수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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