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2차전지 핵심 원료인 구상흑연 등 고민감성 흑연 수출을 통제하기로 하면서 한국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2차전지용 흑연을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어 공장 가동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업계는 수출 허가제가 수출 제한으로 바뀔 수도 있어 긴장감 속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흑연, 배터리 제조에 핵심 광물
흑연은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음극재 제조에 사용되는 필수 원료다. 중국은 세계 최대 흑연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중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갈륨 게르마늄 관련 품목의 수출을 지난 8월부터 통제한 데 이어 흑연까지 수출 통제 대상에 넣은 것은 미·중 갈등 국면에서 산업용 핵심 광물을 무기화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이란 해석이다.수출 통제 대상 품목은 고순도(순도 99.9% 초과)·고강도(인장강도 30Mpa 초과)·고밀도(밀도 ㎤당 1.73g 초과) 인조흑연 재료와 제품, 구상흑연 팽창흑연 등 천연 인상흑연과 제품이다. 수출 통제는 오는 12월 1일부터 시작된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기존에 임시 통제되던 구상흑연 등 고민감성 흑연 품목 3종을 이중 용도 품목(민간 용도로 생산됐으나 군수 용도로 전환 가능한 물자) 통제 리스트에 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배터리산업 타격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로 쾌속 질주하던 한국 배터리산업계에 타격이 우려된다. 한국은 올 들어 9월까지 인조흑연을 7909만달러어치 수입했는데, 이 중 중국 비중이 94.3%에 달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는 한국 기업들이 흑연 수출 허가를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중국 정부와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한국에선 포스코퓨처엠이 중국에서 수입한 천연흑연으로 음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음극재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에 납품돼 배터리로 제조돼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완성차회사에 공급된다.
포스코퓨처엠 관계자는 “수출 허가를 신청하고 받는 데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갈륨 게르마늄은 수출 허가에 시간이 걸리면서 통제 첫 달인 8월 중국의 수출량은 전무했다. 이 회사의 흑연 재고분은 2~3개월치로 알려졌다.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회사들도 긴장하고 있다. 한 회사 관계자는 “흑연은 중국 이외 대체지를 찾는 게 불가능하다”며 “중국 정부의 수출 허가 여부에 따라 국내 공장 가동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광물로 확산될 수 있어
중국 상무부는 “이번 수출 통제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은 아니다”며 “관련 규정에 맞는 수출은 허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추가 조치가 나온 직후 이번 조치가 내려졌다는 점에서 미국의 압박에 대한 맞불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중국 정부가 다른 핵심 광물로 전선을 확대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2021년 중국 정부의 요소 수출 금지 때처럼 다른 광물로 번지면 한국 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유럽연합(EU)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중국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광물은 33종에 달한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김재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