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데스게임'이다. 공주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은 공주와 게임을 해야 한다. 게임에서 이기면 공주와 결혼하지만, 지면 목숨을 잃는 설정. 망국의 왕자 칼라프는 목숨을 걸고 게임을 신청해 공주의 사랑을 얻고자 하고, 왕자의 시녀 류는 목숨을 바쳐 왕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산물인 '목숨을 건 사랑'. 이러한 소재가 지금의 관중들에게 어떻게 공감받을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서울시오페라단은 오는 26~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색다른 해석을 가미한 오페라 투란도트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에는 두 인물의 합작이 일찍이 큰 기대를 모았다. 연극계 거장 손진책의 첫 오페라 연출작이자,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의 첫 국내 오페라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손진책 연출가는 "널리 공연되는 투란도트의 결말과 다르게 류가 지키고자 한 숭고한 가치를 더 깊이 되새기는 연출을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류의 희생으로 칼라프와 투란도트가 사랑하게 된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불길한 커플이 되는 것 같기도 했고요. 류의 죽음이 구원하는 것은 칼라프와 투란도트 커플이 아니라 전 국가, 민중들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죽음의 도시가 삶의 도시로 바뀌는 구조로 연출하고자 했어요. " (연출가 손진책)손 연출은 1981년 마당놀이를 무대에 올리며 연극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 총감독, 2010~2014년 국립극단 예술감독 등을 맡았다. 그는 첫 오페라 연출을 맡은 소감에 대해 "오페라나 연극·뮤지컬이나 본질은 소통"이라며 "다만 오페라는 음악이 우선이기 때문에 (음악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칼라프 역에는 세계적 테너 이용훈이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올랐다. 그는 서정적 음색과 힘 있는 목소리를 지닌 '리리코 스핀토'로 세계 정상급 극장에서 공연해왔다. 지난 시즌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에서 같은 역할을 맡있다. 특히, 칼라프의 아리아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를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20여 년간 한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 유명 무대에서 120여 회 투란도트 무대에 섰는데 드디어 한국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며 "다양한 버전의 투란도트 무대에 섰는데, 오페라에 대한 새로운 시도만큼 원작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데뷔가 늦어진 점에 대해서는 "해외는 빠르면 5년 전부터 제안이 오지만 국내는 다음 달 열리는 공연인데 출연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미 스케줄이 차서 출연할 수가 없다. 프로 성악가로 활동한 지 20년인데 일정이 밀리다 보니 이제야 국내 공연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인 투란도트 역에는 이탈리아 베로나, 베니스 극장 등 유럽 무대에서 활동해 온 소프라노 이윤정을 낙점했다. 이윤정은 "투란도트는 데뷔작이기도 한데, 무대에서 100번 넘게 공연한 작픔"이라며 "할 때마다 연출이나 지휘자에 따라 달라져서 항상 기대된다"고 말했다.
류 역에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우승한 소프라노 서선영이 출연한다. 서선영은 "류의 사랑은 단지 희생이 아니라 칼라프를 향한 사랑 표현으로 죽음을 택한 것"이라며 "제가 생각한 해석으로 류를 표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미완성 유작으로 1926년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푸치니는 3막에 등장하는 류의 죽음까지만 작곡을 한 상태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초연 무대에서 전설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가 이 장면까지만 지휘하고 공연을 멈췄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는 테너 이용훈과 박지응·신상근이 칼라프 역을 나눠 맡고, 투란도트는 소프라노 이윤정·김라희가, 류는 소프라노 서선영·박소영이 각각 연기한다. 무대는 이태섭, 의상은 김환, 안무는 김성훈 등이 참여해 극 중 배경을 원작의 고대 중국풍이 아닌, 시대와 국적이 불분명한 어느 지하세계로 표현한다.
최다은/송태형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