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우동 강원대병원장은 17일 경북대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사 직전인 지방 의료시스템을 살리기 위해선 하루 빨리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다.
의료계가 또다시 폭풍전야다.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다. 동네의원을 운영하는 개원의와 대학병원 전공의 등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료계 원로들의 소신 발언도 잇따르고 있다. 그만큼 지방·필수의료 시스템이 고사 직전에 놓였다는 의미다.
소신 발언 나선 병원장들
남 병원장은 이날 “지금 의대 정원을 확대해도 현장에 배출되는 시기는 10년 뒤”라며 “현장에선 10년을 어떻게 버티느냐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국감에 출석한 양동헌 경북대병원장도 “지역 필수·중점의료를 처리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며 “의료제도, 지원 등도 따라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도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이날 “(의대 정원 확대는) 여야 모두 찬성하는 만큼 정책 협의에 나서달라”고 했다.
정부는 그동안 국립대병원 등을 중심으로 지방 의료인력을 늘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논의해왔다. 국립대병원 소속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바꾸고 정원·인건비 규제를 완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국립대병원 교수는 “지역인재 정원을 활용해 장학금을 주고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받고 의사로 근무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논의해왔다”며 “지방 의료는 국립대병원이 책임지고 살리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반대 목소리도 여전
의사단체의 반대 목소리는 이날도 이어졌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이날 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정부가 의대 증원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도 “의사들과는 상의 없이 정원 확대를 결정했다”며 조규홍 복지부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이들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의대 정원 확대보다는 건강보험 진료비 인상 등의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의 적정 보상 수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성형외과 피부과 등에 비해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의 소득이 적은 것은 맞지만 국내 의사들의 전반적인 연봉 수준은 낮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의사의 연평균 임금은 2억3070만원이다. 국내 임금 근로자 평균 연봉(3997만원)의 여섯 배에 육박한다. 지역 의료기관에선 연봉 3억~4억원을 줘도 필수과 적임자를 찾지 못한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가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필수의료 파트 고령화는 심해지고 있고 의사들의 번아웃도 심각한 상태다. 환자 생명을 살리는 보람을 찾아 필수과를 선택했다가 높은 피로도와 노동 강도 등으로 탈출하는 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정부, 19일 발표는 미루기로
의료계 반발이 이어지자 정부는 19일께로 예상됐던 의대 정원 확대 계획 발표를 미루기로 했다. 정원 확대 의지는 바뀌지 않았다. 조 장관은 이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의사인력전문위원회 첫머리발언에서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현실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의사 증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의사가 많아지면 환자를 보는 진료 분야뿐 아니라 바이오, 의공학 등 과학 분야로도 인재가 흘러갈 것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애초 500명 선으로 예상되던 증원 규모는 최근 들어 1000명, 3000명 등으로 대폭 확대됐다. 정부와 논의해 온 국립대병원뿐 아니라 이공계 대학 등에도 의대가 신설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에 묶여 있다.
이지현/한재영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