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지난 6월 발표한 2023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총 64개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2015년 15위이던 것이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평가 요소 중 ‘기업 효율성’은 33위, ‘정부 효율성’은 38위다.
기업 효율성은 국가 정책에 크게 좌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규제 혁파’를 부르짖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업 정책 중 가장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이 ‘대기업 정책’이다. 한국은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어서다.
세계 최초로 반(反)독점법을 만든 나라는 미국이다. 1890년 셔먼법(Sherman Act)은 독점기업 분할을 명할 수 있는 강력한 법률이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 대기업을 역차별하는 규제는 없다. 미국 한 개 기업 주식의 시가총액이 한국 유가증권시장 전체의 시가총액을 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패전국 일본과 독일 대기업을 분해했다. 그러나 일본은 대기업 규제를 조금씩 없애더니 1955년께는 마침내 대부분 폐기했다. 일본 기업의 생존과 일본 경제의 부흥을 위해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대기업이 절대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폐기한 경제력 일반 집중 규제 모델은 1986년 한국 독점금지법에서 극적으로 부활했다. 일단 만들어진 규정은 시간이 지나며 더욱 정교하고 강해져 대기업을 옥죄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은 ‘K-대규모기업집단 규제법’을 가진 세계 유일한 국가가 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승자박한 꼴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대규모 내부거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비상장회사 주요 사항 공시, 기업집단 현황 공시, 주식 소유 현황 신고, 특수관계인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 자료 제출 의무 등 10여 가지에 이른다.
이 중 공시·신고·자료 제출은 대부분 자연인인 동일인(기업 총수)의 의무사항이다. 법률상 아무런 조사권이 없는 사인(私人)에 불과한 ‘동일인’이 직접 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범위를 판단해 소속 회사들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동일인 관련자들(4촌 이내의 친족과 3촌 이내의 인척 등)·회사 임원·사외이사 등의 개인적 투자 내역까지 정확하게 파악한 뒤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자료를 작성해 국가에 보고해야 한다. 부실·허위 보고 시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방대한 자료 준비를 대기업그룹 총수가 혼자서는 물리적으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니, 그저 회사 직원들이 잘 해주길 기도할 뿐이다. 문명·법치국가인 현대 한국에서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이 가능하다니 놀랍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자체가 잘못된 제도인데, 아무런 힘이 없다고 호소하는 공정위는 법률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한다. 힘센 국회가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는 이 제도 자체를 폐지할 배짱이 없으니 어쩌나. 결국 제도 존치를 전제로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공정위가 지주회사 등 대표회사에 지정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한편 대표회사가 파악하기 어려운 대주주의 친인척 등이 소유한 회사에는 공정위가 직접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마침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위 결론에 대해 참석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각 있는 의원들이 힘을 모아 이 최악의 킬러규제를 개선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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