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급감으로 인해 사립대학 폐교는 피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재정적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미 폐교된 대학의 법인도 제대로 청산 절차를 완료하지 못하고 있으니 합당하고 현실적인 법안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논의를 할 때 대학의 오래된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12~13세기 볼로냐와 파리에서 태동한 대학의 원조는 ‘유니버시타스(universitas)’ 즉 ‘자치 길드’로 인정받았다. 다만 이 길드는 특정 생업에 직결되지 않는 ‘자유로운 기술(artes liberales)’을 전수하는 ‘선생과 학생의 길드’였다. 이 특이한 길드의 구성원 대부분은 다른 지역에서 온 외지인이었기에 함께 거주할 시설이 필요했다. 이런 목적으로 세워진 기숙사 겸 교육용 건물을 함께 사용하는 공동체는 ‘콜레기움(collegium·같은 규정을 지키는 공동체)’으로 불렸다.
이 교육공동체들의 개인 ‘주인’은 없었다. 다만 개인 ‘기부자’는 필요했다. 중세의 명문 파리 소르본대는 대학 설립의 토대가 된 기부금을 낸 성직자 로베르 드 소르본을 학교명에 올렸다. 근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세계 최고 대학인 미국 하버드대는 1637년 영국에서 뉴잉글랜드로 건너온 성직자 존 하버드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서른을 못 채우고 죽었지만 그가 기부한 기금과 장서가 신대륙에 신설된 교육공동체 발전의 씨앗이 됐다.
주인은 없으나 기부자는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 대학의 오래된 전통이다. 특정 개인이 그 공동체 탄생에 기여했다고 해도 해당 대학은 사사로운 개인이 주인인 ‘사립대학’이 아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고등교육법이 물려준 사립대학이란 말은 주인이 없어야 할 대학을 사유재산으로 보는 왜곡의 길을 열어놨다.
사립대학의 운영 주체를 ‘이사회’로 지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이사들은 영리 목적 법인의 지분 소유자가 아니다. 이들은 이 같은 제도의 근간이 되는 영미법에 따르면 ‘신탁관리자’들이다. 신탁관리자는 신탁자산을 ‘위탁자’의 뜻에 따라 ‘수혜자’의 유익을 위해 운용할 책임을 진다. 개인 재산의 경우 미성년 상속자가 이런 신탁의 수혜자들이다. 교육기관 등의 법인에서 수혜자는 해당 기관의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들이다. 신탁관리자가 수혜자가 아니라 본인의 이득을 위해 신탁자산을 운용하는 것은 위탁자의 뜻을 어기는 위법행위다.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팽창하고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에 많은 대학이 설립됐다. 그 이유가 소르본이나 하버드처럼 경건하고 지혜로운 기부자가 많아서일까? 아니면 대학 운영을 통해 사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재정적 유인책’이 그 비밀일까? 전자라면 대학을 폐교할 경우 다른 선한 목적으로 해당 자산을 전용하면 될 일이다. 후자라면 설립자와 그의 가족이 신탁자산인 대학을 운영하며 어떻게 기부 시점보다 더 많은 사유재산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만약 수혜자에게 갈 몫을 이들이 챙기느라 폐교 위기에 봉착한 것이라면 ‘재정적 유인책’의 혜택을 이들에게 줄 이유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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