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 사이 벌판을 한 젊은 여성이 뛰어간다. 헉헉거리며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흐르지만 표정은 어둡지 않다. 마침내 빽빽한 나무 사이, 숲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멈추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내쉰다. 이때 자막과 함께 흐르는 내레이션.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대한민국 산림이다.”
김지호 감독이 ‘산림청 29초영화제’에 출품한 ‘내가 숨을 쉬는 방법, 한반도가 숨을 쉬는 방법’이란 제목의 영상 내용이다. 이 작품은 10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우거진 숲을 하늘에서 찍은 원거리 영상과 주인공이 달리고 숨 쉬는 모습을 가까이서 포착한 영상을 교차해 이번 영화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감독은 “한반도도 사람처럼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며 “숨을 쉬기 위해 가야 할 곳이 ‘대한민국 산림’임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산림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깨우는 이야기를 짧은 영상으로 펼쳐내는 산림청 29초영화제가 올해 ‘국토 녹화 50주년’을 기념해 처음 열렸다. 산림청과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최하고 29초영화제 사무국이 주관했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 ]다’였다. 힘든 일상과 버거운 삶에 지칠 때 찾게 되는 명산 및 휴양림 이야기부터 가족의 품이나 이불 속 등 일상에 ‘초록빛’을 더하는 쉼터에 관한 이야기 등을 담은 작품이 다수 출품됐다. 공모는 지난 8월 19일부터 9월 17일까지 이뤄졌다. 일반부 275편, 청소년부 66편, 홍보·NG·메이킹필름 45편 등 모두 386편의 작품이 응모했다. 이 가운데 일반부 7편, 청소년부 5편 등 모두 12편이 수상했다.
청소년부 대상은 권선유 감독의 ‘엄마 품속, 엄마 품이라는 숲의 속’이 받았다. 지친 표정의 여학생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든다. 화면은 이 여학생이 환하고 밝은 얼굴로 숲속을 거닐며 휴식을 취하는 꿈속으로 바뀐다. 숲길을 뛰어다니고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숲속에서 즐겁게 놀던 주인공이 누군가를 끌어안는 동작을 취할 때 내레이션이 흐른다. “내가 쉬어가는 가장 큰 숲은 그래도 아직은 엄마 품속.” 방안으로 돌아온 화면은 엄마를 껴안으며 활짝 웃는 여학생의 얼굴을 비춘다.
일반부 최우수상을 받은 이소연 감독의 ‘산림[살림]’은 공상과학(SF) 영화를 보는 듯한 스토리 구성과 화면 연출로 호평받았다. 작품의 배경은 환경오염으로 인류가 기약 없이 지구를 떠나게 된 2177년. 지구를 다시 살리기 위해 파견된 한 요원은 황폐해진 땅에 묘목을 심고 물을 준다. 99번째로 시도하는 마지막 지구 산림복원 프로젝트다. 시간이 흘러 이 요원의 아들인 듯한 한 청년이 울창한 숲을 거닐며 사진을 보고 말한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영상뿐 아니라 산림만이 지구를 살린다는 의미를 담아 산림과 살림을 함께 표기한 작품 제목도 기지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소년부 최우수상 수상작인 윤태희 감독의 ‘쉬는 시간 속 단잠’은 공부라는 무거운 짐을 진 청소년의 현실과 이번 영화제의 주제를 재치 있게 연결했다. 수업 시간에 졸음과 사투를 벌이던 여학생 유진은 그만 잠이 들고 만다. 숲속에서 일어난 그는 수업받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을 짓는다. 환하게 웃으며 숲길을 거닐다가 갑자기 비틀거린다. 책상에 쓰러져 잠자던 유진을 친구가 흔들어 깨운다. “유진아, 일어나. 쉬는 시간 끝났어.”
이날 시상식엔 이번 영화제에 출품한 감독과 이들의 가족, 친구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시상은 남성현 산림청장과 김정호 한국경제신문 사장 등이 맡았다. 축하공연에서는 2021년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란 곡으로 데뷔한 가수 21학번(본명 김아영)이 ‘코인 노래방’ ‘스티커 사진’ 등 대표곡들을 열창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일반부 대상 1000만원을 포함해 총 3000만원의 상금과 상패 등이 수상자들에게 수여됐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