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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아지랑이? 그게 세상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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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면 마지막으로 남는 ‘기본 단위’는 뭘까.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까지는 세상이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로 이뤄져 있다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근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답은 ‘원자’로 바뀌었다. 이후 원자를 전자·양성자·중성자로 쪼갤 수 있다는 게 밝혀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마저 더 잘게 쪼갤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현시점에서 인류가 발견한 가장 작은 기본 단위는 ‘17종류의 기본 입자’다. 하지만 여전히 학자들은 이 입자들을 더 잘게 쪼갤 방법을 찾고 있다.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초끈 이론’도 이와 관련이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세상 만물은 아주 작은 ‘흔들리는 끈’으로 구성돼 있다는 이론이다. 물리학계에서 세상의 기본 단위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왕쉬예(王舒野·60)의 작품은 이 같은 초끈 이론을 연상시킨다. 모든 사물과 풍경을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듯한 작은 물결 모양, 즉 ‘흔들리는 끈’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초끈 이론을 참조하지는 않았지만 표현 방식을 설명하는 논리는 비슷하다. 작가는 “사람들은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점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며 “그 불확실성을 표현하기 위해 동적인 선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초끈 이론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접하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때로는 이처럼 예술적 상상이 우연찮게 최신 과학 이론과 비슷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조르주 쇠라가 창시한 점묘법도 점(원자)으로 모든 걸 그린다는 점에서 ‘원자론’에 자주 비유되곤 한다.

왕 작가는 이력이 특이하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 작가다. 젊은 시절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1990년 지금의 일본인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 일본에 정착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작품 활동을 일절 하지 않으면서 작품 세계를 갈고 닦았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 일본과 중국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우환 화백과도 절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장에는 그의 ‘시공나체·즉(視空裸體·卽)’(사진) 연작 19점이 걸려 있다. 시공나체는 ‘이 세상의 적나라한 본질을 그대로 표현했다’는 뜻이다. 학고재갤러리의 모습을 비롯해 경복궁의 전면,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등 한국의 여러 풍경을 그렸다지만, 자세한 형체는 알아보기 어렵다. 비오는 날 차창 밖으로 내다본 밤거리의 아스라한 불빛도 연상된다. 작가는 “박쥐와 돌고래가 초음파로 보는 세상과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이 다르듯, 눈에 보인다고 해서 다 확실한 진실은 아니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우환 화백은 이번 왕쉬예의 전시에 추천사를 이렇게 썼다. “왕쉬예의 작품은 엑스터시를 느끼게 합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때로 현실을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지요. 모든 것이 섞이며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좀 더 근원적인 차원을 꿰뚫어 보려는 원대한 철리(철학의 이치)가 넘어다 보입니다.” 전시는 10월 2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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