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권력 서열 3위인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이 3일(현지시간) 해임되면서 미국 워싱턴 정가는 대혼란에 빠졌다. 공화당 내 소수 강경파의 돌출 행동으로 미국 의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차기 하원 의장 선출이 늦어져 내년도 예산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중단)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화당에서 8명 반란표
매카시는 지난 1월 당내 강경파 의원의 반대로 인해 15번의 투표 끝에 하원 의장으로 선출됐다. 강경파 의원들은 의장 선출 투표 때 소수파 권한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매카시 의장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코커스(의원 모임)가 아닌 개별 의원 한 명이 하원 의장 해임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원 운영 규칙을 바꿨다.결국 이 규칙 개정으로 매카시는 미국 역사상 처음 해임되는 하원 의장이 됐다. 그동안 하원 의장 불신임안이 제출된 건 1910년과 2015년 두 차례 있었다. 그러나 표결에 부쳐져 가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해임안 통과에는 민주당의 해임 찬성 당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날 공화당 강경파인 맷 게이츠 의원 등이 해임 결의안을 발의할 때만 해도 부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매카시 의장 해임에 찬성 의견을 밝힌 공화당 강경파 의원이 10명 안팎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임 결의안 표결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208명) 전원이 해임안에 찬성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결국 민주당과 공화당 강경파 의원 8명을 합쳐 전체 찬성표가 과반인 216표가 나왔다. 매카시 전 의장이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조사를 추진하자 민주당 내에서 반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매카시 전 의장이 연방정부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임시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5월 합의를 뒤집는 예산안을 추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원 의장 선출 늦어지면 혼란 불가피
신임 하원 의장이 선출되기 전까지 미국 의회는 대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당초 유력하게 거론되던 매카시 전 의장의 재출마 시나리오는 없던 얘기가 됐다. 매카시 전 의장은 이날 표결 후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국민을 위해 봉사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자부심을 안고 이 자리를 떠나며 다시 하원 의장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하원 공화당의 2인자인 스티브 스컬리스 하원 원내대표와 서열 3위인 톰 에머 의원 등이 차기 의장 후보로 거론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공화당 의석(221명)이 민주당(212명)보다 근소한 우위이기 때문에 공화당 내 일부 이탈표가 발생하면 매카시 전 의장 때처럼 재투표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AP통신은 “공화당 내 유력한 하원 의장 후보자가 없다”고 전했다.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인 상황에서 민주당 출신 하원 의장이 나올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차기 의장 선출 전까지 임시 의장은 매카시 전 의장 측근인 패트릭 맥헨리 금융위원장이 맡는다. 하지만 임시 의장의 권한은 행정 업무 등으로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주요 의사 일정 처리가 지연될 공산이 크다. 지난달 말 임시예산안을 처리한 미 의회는 오는 11월 17일까지 내년 본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또다시 셧다운 위기에 빠지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임시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빠진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공화당이 응할지는 미지수다. 공화당은 우크라이나보다 미국 남부 국경 강화가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국방 정책·예산을 담은 국방수권법(NDAA) 처리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하원 의장 부재로 인해 내년 예산안을 제때 통과시키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며 “그동안 하원이 추진하던 모든 일이 사실상 중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