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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메랑으로 돌아온 '친일파 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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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만든 굴락(Gulag·강제수용소)이 아우슈비츠의 원형이었다.” 독일의 역사학자 에른스트 놀테는 일찍이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거울을 보고 마주한, 뒤집어 놓은 판박이로 봤다. 죽기 살기로 총력전을 치렀던 극우와 극좌세력은 외견상 모든 것이 대비되는 상극의 존재로 여겨졌지만, 실상은 서로를 모방하며 비슷한 ‘괴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때아닌 '역사 논쟁'
놀테는 두 전체주의 체제의 상호 따라하기 양상을 600쪽이 넘는 <유럽의 내전 1917~1945>라는 책에 상세히 담았다. 그에 따르면 소련의 수용소군도를 본 후에야 나치는 유대인을 강제수용소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유대인 절멸 정책의 뿌리에는 볼셰비키의 계급 학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체제 선전에 앞장선 양국의 기관지들은 마치 서로를 베낀 듯 비슷한 극단적 용어를 동원하며 상대방을 악마화했다.

40여 년 전 독일 역사학계에 큰 논쟁을 일으킨 놀테의 주장을 떠올린 것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는 역사 논쟁과 비슷한 점이 적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추진과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움직임을 계기로 얼마 전부터 역사적 사실과 역사관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졌다. 특히 홍 장군의 사례가 논란의 핵심이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 군가를 작곡하고 인민군 선무활동에 앞장선 이력 탓에 손쉽게 시비(是非)를 가를 수 있는 정율성과 달리 홍 장군의 행적은 보기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과 평가가 가능해서다.

주목되는 점은 최근의 역사 논쟁에선 공수가 교대됐다는 것. 야권을 비롯한 소위 진보 진영은 오랫동안 반대 진영에 ‘친일파’의 낙인을 찍어왔다. 그간 진보 진영은 복잡하게 뒤얽힌 굴곡진 현대사를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며 순간의 과오로 평생의 공을 덮곤 했다. 예를 들어 인촌 김성수의 다양한 이력은 ‘친일 반민족행위자’라는 단색으로 일방적으로 채색됐다. 그 결과, 고려대 인근 ‘인촌로’는 2019년 ‘고려대로’로 강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2020년 백선엽 장군이 사망하자 불거진 현충원 파묘(破墓) 논란도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과 헌법 수호를 위한 필연적 과정”(강창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포장됐다. 전북 남원 춘향사에서 60여 년간 자리를 지킨 춘향 영정마저 작가(이당 김은호)의 친일 이력 탓에 쫓겨나는 등 공세는 전방위적이었다.
뒤바뀐 공격과 수비
‘과(過)’를 앞세워 한 인물의 삶과 행적을 재단한 무차별적 ‘친일파 몰기’는 얼마 안 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홍 장군의 사회주의 이력은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킨다는 육사 건학이념과의 괴리만 부각했다. 자유시 참변 당시의 불분명한 책임 소재는 항일무장투쟁의 공(功)을 가리는 결격 사유로 부상했다.

얼마 전까지 친일파로 내몰린 이들은 “복잡다단한 역사 상황을 고려해야 하고 한 시점을 근거로 총체적 인간의 삶을 두부 자르듯 단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 논리가 ‘빨치산’으로 지목된 이를 변호하는 데 쓰이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역사를 선전·선동 수단으로 악용한 대가는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돌아온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다. ‘칼’을 ‘역사’로 바꿔도 통용되는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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