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한 장비 수출 통제를 무기한 유예할 것이란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반도체업계에서 나온 반응이다. 중국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감지되지만 ‘미국 정책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여전하다. 최근 확정된 가드레일 규정(10년간 생산능력 5% 이상 확대 금지)을 감안할 때 기업들이 중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중국 반도체 공장을 ‘연명’하는 수준에서 운영해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한시름 놨지만…우려 여전
27일 정부와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국이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무기한 유예하게 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엔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미국 상무부에 건건이 보고하지 않고도 18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를 중국 공장에 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현재 삼성전자 시안 공장은 128단 낸드플래시,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은 10㎚ 중반대 D램을 주로 생산한다. 최첨단 제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형도 아닌 수준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이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대 후반,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의 D램 생산 비중은 전체의 40%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 반도체공장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지난해 10월 받은 1년 유예 조치의 종료를 앞두고 긴장한 상태였다. 화웨이가 이달 초 공개한 스마트폰에 한국산 D램이 들어가면서 ‘최악의 경우 장비 반입이 차단될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무기한 유예가 확정되면 이들 기업이 한시름 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명목적으론 첨단 장비를 도입해 중국 공장에서 최신 D램,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는 게 가능하다”며 “중국 리스크(위험요인)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비중 낮추고 국내로 유턴
그렇다고 두 손 들어 환영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리스크가 완화된 것이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 미국 상무부가 중국 공장에 대한 장비 수출 통제를 다시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미국은 국익에 따라 언제든지 동맹국 기업과 관련한 정책을 바꿀 수 있다”며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지난 21일 확정된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가드레일 조항에 따라 삼성전자가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키울 수 없게 된 것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D램과 낸드플래시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게 경쟁력의 핵심인데 중국 공장에선 이런 전략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 고위 관계자는 “중국 공장을 지렛대로 중국 정부와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겠지만 앞으로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업계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 생산 비중을 낮추고 국내 라인을 늘릴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조성하기로 한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가 핵심 생산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황정수/이슬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