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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릿지·옥스퍼드 등 유서 깊은 영국 대학들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년 간 정치논리에 따라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되면서다. 낮은 급여로 교수진 수준이 저하되고 외국인 학생 의존도가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시간) “영국 대학들이 본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재정난을 겪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영국 24개 명문대학으로 구성된 러셀그룹에 따르면 이 대학들은 2022~2023학년도에 학생 1인당 평균 약 2500파운드 적자를 봤다. 같은 기간 영국에서 재정 적자를 기록한 대학은 30개에 이른다. 이 수치는 2023~2024학년도에 3배 증가할 것으로 영국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이는 영국이 지난 12년 동안 대학 등록금을 사실상 동결한 여파다. 영국 정부는 매년 전국 대학에 동일한 등록금 상한선을 정하고 있다. 이 등록금 상한선은 2011년 3290파운드에서 9000파운드로 오른 뒤 6년 간 동결됐다. 2017년 9250파운드로 소폭 오른 금액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 등록금은 약 3분의1 줄어들었다고 데이터HE는 분석했다.
대학 등록금 인상은 영국 정치권에서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다. 각 정당이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2011년 등록금을 단 숨에 세 배 가까이 올리자 전국에서 반대 시위가 들끓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보수당 출신 테레사 메이 전 총리는 2017년 오히려 등록금을 20%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같은 해 노동당은 등록금을 아예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현 정부도 이르면 내년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등록금 인상에 미온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로버트 하펀 고등교육부장관은 최근 타임스 고등교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영국 평균 급여가 하락한 상황에서 등록금 인상은 백만년 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러한 재정난이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들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교원 수를 줄이거나 임금을 낮추고 있다. 노리치에 위치한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은 연 3000만파운드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일부 교수진과 행정직원을 해고하고 교육·연구 분야를 축소했다. 올해 초 150개 대학에서 일하는 교직원 약 7만명은 고용 안정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학생들도 직접 피해를 겪고 있다. 대학들이 온라인 수업 비중을 늘리고 기숙사를 줄이면서다. 요크대학교 1학년 이사벨 코리(19)는 “2022~2023년도에 수강한 6개 과목 중 5개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고 토로했다. 글래스고대학은 올 여름부터 차로 1시간 거리 안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는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대학들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외국인 학부생 수를 대폭 늘리고 있다. 외국인은 등록금 상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러셀 그룹의 외국인 학부생 비율은 지난 2017년 16%에서 2022년 25.6%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학부생 평균 등록금도 1만8000파운드에서 2만3750파운드로 치솟았다. 한 대학 관계자는 “외국인 학생 의존도가 높으면 대학 재정이 지정학이나 정부 이민 규정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