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5일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 정책이 2021~2050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0.6%포인트 낮출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다.
한은은 넷제로 정책으로 편익이 늘어나는 측면이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상승해 기업의 비용 부담이 증가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부가 탄소세를 도입하거나 배출량을 직접 통제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고탄소 산업의 배출권 구입 부담이 커져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다른 국가보다 한국에서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고탄소 산업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1차금속, 전기공급업, 비금속광제품, 화학물질·화학제품 등 고탄소 산업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6%에 이른다. 한은이 2021년 ‘해외 경제포커스’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고탄소 산업 비중은 미국이 10% 안팎이고, 독일은 12%, 일본은 15% 정도다.
한국의 올해 성장률이 1%대 중반으로 전망되는 데다 저출산과 고령화 여파로 장기 저성장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연평균 0.6%포인트의 성장률 감소는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탄소중립을 맹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저탄소 기술 발전에 맞춰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굴뚝기업 몰린 지방, 수도권보다 타격 커"…부울경 총생산 가장 많이 줄 듯
탄소중립이 수도권과 지방의 성장 격차를 더 벌릴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고탄소산업이 수도권보다 지방에 더 많기 때문이다.한국은행에 따르면 탄소중립 정책으로 지역내총생산(GRDP)이 가장 많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은 부산 울산 경남 등 동남권이다.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정책을 강행하는 시나리오에서 이 지역의 2021~2050년 연평균 GRDP 감소폭은 1.5%포인트로 전국 평균(-0.6%포인트)의 2.5배에 달한다. 이 지역은 자동차, 자동차 부품, 조선 등 국내 주요 산업의 공장이 밀집해 있다. GRDP에서 고탄소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1%를 넘는다.
산업 내 석유화학업종 비중이 가장 큰 호남권(광주 전남 전북)의 GRDP 감소폭이 1.2%포인트로 두 번째로 컸다. 충청권(-0.6%포인트), 대구·경북권(-0.5%포인트) 등은 전국 평균 수준이었다. 수도권 성장률은 0.4%포인트 감소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탄소중립 정책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이 시급한 것으로 제시됐다. 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이 발전하면 온실가스로 배출되는 탄소가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덜 떨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기술 개발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년 11.5% 감소하는 걸 가정한 시나리오에서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 감소폭은 0.5%포인트로 기존 시나리오(0.6%포인트 감소)에 비해 0.1%포인트 작았다. 동남권과 호남권도 성장률 감소폭이 0.2%포인트씩 축소됐다.
보고서에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대신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2도 이하로 억제하는 더 완화된 탄소저감 정책을 펼 경우에 대한 분석도 있다. 이 경우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 감소폭은 0.4%포인트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보다 감소폭이 0.2%포인트 줄어드는 것이다. 속도 조절과 기술 개발 효과를 모두 적용하면 성장률 감소폭이 0.1%포인트까지 낮아져 사실상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대부분 해소된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